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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미친짓이었는데 벌써 30년… 교향악축제는 우리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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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미친짓이었는데 벌써 30년… 교향악축제는 우리 자부심"

입력
2020.08.28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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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정치용ㆍ지중배 "코로나19니까 연주해야"

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정치용(왼쪽), 지중배 지휘자는 "관객 반응이 공연에 큰 영향을 준다"며 "무관중 공연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에너지"라고 입을 모았다. 예술의전당 제공

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정치용(왼쪽), 지중배 지휘자는 "관객 반응이 공연에 큰 영향을 준다"며 "무관중 공연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에너지"라고 입을 모았다. 예술의전당 제공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한 데 모여 몇날 며칠 릴레이로 교향악을 연주한다는 구상은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 미친짓'이었죠. 그렇게 시작된 '교향악축제'가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을 비롯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 자부심입니다."

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정치용(63) 지휘자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7월 28일~8월 10일) 참가 소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그는 지난 2일 공연에서 흔히 접하기 힘든 슈만의 교향곡 3번 등을 들려줬다. 정 지휘자는 올해 참가한 14개 악단 지휘자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 교향악축제 무대에 섰다. 국내 교향악 역사의 주역이다. 정 지휘자는 "악단들은 1년에 한 번 있는 이 무대에 참가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공연을 준비하는데, 그렇다 보니 오케스트라 간 경연대회 같은 성격도 있어서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자극제 역할도 한다"고 평가했다.


정치용 지휘자는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은 지휘자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음악이 갖는 메시지를 관객에 잘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정치용 지휘자는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은 지휘자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음악이 갖는 메시지를 관객에 잘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올해 처음 교향악축제에서 지휘봉을 잡은 지중배(37) 지휘자는 "독일 음악축제의 경우 관객들이 선호하는 악단이 초청되는 일이 많은데, 교향악축제는 다양한 국공립 오케스트라가 여러 프로그램을 연주하기 때문에 평소 접할 수 없었던 음악을 느껴보는 기회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올해 처음 시도된 실시간 온라인 중계 방식도 높이 평가했다. 지 지휘자는 "현장에 온 관객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공연을 본 이들까지 더하면 청중 수는 예년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며 "온라인으로 공연을 접한 뒤 좋은 인상을 받은 분들은 다음 번에 직접 공연장을 찾아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989년 시작해 올해 31회를 맞은 교향악 축제는 통상 봄철에 열리곤 했는데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탓에 여름에 열렸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돼 공연장 문이 다시 걸어 잠기는 상황에서 파행만은 피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언제 또 대면공연이 재개될지 불확실한 터라 지난 축제는 연주자들과 관객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지중배 지휘자는 "오케스트라가 관객에게 감동을 강요할 수 없지만, 일단 공연을 보면서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 그 여운은 매우 오래간다"며 "지휘자와 연주자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지중배 지휘자는 "오케스트라가 관객에게 감동을 강요할 수 없지만, 일단 공연을 보면서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 그 여운은 매우 오래간다"며 "지휘자와 연주자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그렇지만 여전히 축제가 넘어야 할 숙제가 있다. 대중음악에 비해 어렵다는 클래식, 그 중에서도 길이가 긴 교향곡은 “부담스럽다”는 편견을 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정 지휘자는 "실제 공연장에서도 교향곡 한 곡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며 "클래식이 기본적으로 유럽 태생의 음악인 탓에 익숙해지기 전까진 즐기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했다.

야구 규칙을 모르고 경기를 보면 재미가 없는 것처럼, 클래식도 최소한의 공부가 필요하다. "쇤베르크의 음악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유럽"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학교에서 클래식에 대한 노출을 늘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용(왼쪽) 지휘자는 교향악축제에 무려 18회나 참가했다. 올해 참가한 지휘자 가운대 최다 기록이다. 지중배 지휘자는 행사 직전까지 미정이었던 KBS교향악단의 협연자로 전격 발탁되면서 올해 처음 축제 무대에 섰다. 예술의전당 제공

정치용(왼쪽) 지휘자는 교향악축제에 무려 18회나 참가했다. 올해 참가한 지휘자 가운대 최다 기록이다. 지중배 지휘자는 행사 직전까지 미정이었던 KBS교향악단의 협연자로 전격 발탁되면서 올해 처음 축제 무대에 섰다. 예술의전당 제공


서울대 음대를 거쳐 클래식 수도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지휘를 전공한 정 지휘자와 지 지휘자는 국내 클래식계의 역사와 미래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이들도 코로나19는 견디기 힘든 시련이다. 당장 이달과 다음달에 예정됐던 공연 대부분이 취소됐다.

정 지휘자는 "민간단체나 프리랜서 연주자들에게 코로나19는 생존권 문제가 크지만, 그 이상으로 음악인으로서 사명을 도전받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예술인들은 정신적으로 사람들을 치유할 임무가 있는데 그 본질적인 행위가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무관중, 온라인 공연이라 해도 "연주는 계속돼야 한다"는 게 정 지휘자의 생각이다.

코로나19 탓에 온라인 공연은 시대정신이 돼가고 있다. 다만 이런 현상 속에 우려가 되는 측면도 있다. 지 지휘자는 "온라인 공연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코로나19가 끝난 뒤에도 공연장 방문 필요성을 못 느끼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실황 공연만이 줄 수 있는 에너지가 연주자와 관객 모두에게 소중한 만큼 단 한 명의 청중을 위해서라도 무대에 설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정 지휘자는 "온라인 공연이 실제 콘서트를 대체하는 것으로 접근하기 보단, 5G 등 신기술과 첨단장비를 활용해 무대를 더욱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보완재' 역할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비록 바이러스가 계기가 됐지만 50년이 지난 뒤 돌아봤을 때 지금 이 시기가 공연문화의 발전을 이룩한 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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