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권-전준호-이종범-정수근-이대형. 시대를 풍미했던 KBO리그 '대도(大盜)'의 계보가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현역 선수 중 한때 이대형의 뒤를 이을 최고의 도루왕으로 꼽혔던 박해민(삼성)은 최근 몇 년간 타격 하락세와 맞물려 도루가 급감했다.
아울러 최근 몇 년간 타고투저 현상이 득세하면서 '발야구'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도 '도루 스타'의 탄생을 막는 요인이다. 올 시즌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수도 겹쳤다. 시즌 개막이 6주 가량 늦어지면서 쉼 없이 레이스를 벌여야 해 부상 위험이 있는 도루를 지양하는 분위기다.
뚜렷한 후계자가 없는데다 이런 트렌드가 맞물려 올 시즌엔 프로야구 38년 역사상 처음으로 30개 미만의 도루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도루 부문 1위는 서건창(키움)이다. 서건창은 지난 25일까지 19개 도루를 기록했다. 서건창의 뒤를 이어 김혜성(키움) 심우준(KT) 김지찬(삼성)이 16개로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팀이 94경기를 치른 서건창의 경우 144경기로 환산해도 고작 29개 정도가 된다. 서건창은 2012시즌 2위(39개), 2014시즌 3위(48개)에 오를 만큼 도루에 일가견이 있었지만 2015시즌 왼쪽 후방 십자인대 중상을 당한 이후 도루 시도를 자제하고 있다. 올 시즌에도 경쟁자가 없다 보니 떠밀려서 1위에 올라 있는 형국이다. 15개로 공동 5위에 올라 있는 박해민은 낮은 출루율(0.346)을 얼마나 끌어올릴지가 관건이다.
역대 최소 도루왕은 2018년 박해민의 36개다. 지난해엔 박찬호(KIA)가 39개로 도루왕에 올라 2년 연속 리그 도루 1위가 40개를 넘기지 못했다. 이대형의 3년 연속 60도루(2008~2010년), 이종범의 시즌 80도루(84개ㆍ1994년)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당분간 전준호의 통산 최다 도루(550개) 기록에 근접할 만한 후보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역 선수 중 역대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정근우(LG), 이용규(한화) 등도 전준호보다 100개 이상 도루 숫자가 적은 데다 은퇴 시기가 다가오는 베테랑들이라 대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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