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됐다. 독일 명가 바이에른 뮌헨은 프랑스 최강 파리 생제르맹(PSG)을 꺾고 통산 여섯 번째 유럽의 별을 달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결승전만큼 인상적이었던 경기는 바이에른 뮌헨과 FC바르셀로나(스페인)의 8강전이었다. 8-2란 엽기적 스코어는 표면적 결과였다. 이날 경기로 UEFA 챔피언스리그는 15년 만에 리오넬 메시(33)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5)가 없는 4강 대진을 맞이했다. ‘메날두 시대’의 석양이 드리운 것이다.
‘영웅불구립(英雄不俱立)'이란 한자 성어가 있다. 두 영웅이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2004년을 기년으로 하는 ‘메날두 천하’에서는 틀린 말이다. 메시와 호날두는 세상을 양분했다. 둘이 합쳐 발롱도르 11회,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9회, 1부 리그 우승 17회, 컵대회 우승 11회에 달한다. 2018년 루카 모드리치의 수상 전까지 10년 동안 두 선수는 단 한 번도 경쟁자들에게 발롱도르를 내주지 않았다.
둘의 득점 기록은 다른 선수들에게 ‘경쟁’이란 개념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2012년 한 해에만 메시는 91골을 넣는 괴력을 휘둘렀다. 호날두는 2011년부터 5년 연속 시즌 50골 고지를 밟았다. 메시는 라리가, 바르셀로나, 아르헨티나의 득점 역대 1위에 올라 있다.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포르투갈,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 역대 1위다. 라리가 역대 2위는 호날두, 챔피언스리그 역대 2위는 메시다.
꾸준함이야말로 영웅 2인의 빛나는 가치다. 많은 득점은 그만큼 많은 출전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 소속팀에서 메시는 13시즌, 호날두는 17시즌 연속으로 40경기 이상 출전했다. 모든 경기에서 집중 견제를 당하는 메시와 호날두가 크게 다친 적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만화 속에서나 가능한 업적이다. 프리미어리그 최고 레전드 티에리 앙리는 “사람들은 두 선수의 꾸준함을 인지하고 있을까? 최정상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라며 혀를 내둘렀다.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가 같은 시대 같은 무대에서 활약했다고 상상해보라. 지금 메시와 호날두가 그렇다. 이렇게 찬란한 슈퍼스타 두 명의 동반 출현은 축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모든 여정에는 끝이 있듯이 메시와 호날두도 2년 전부터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은 같은 날 나란히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2019~20시즌은 시작부터 상징적이었다. 코파아메리카에 출전했던 메시가 부상으로 라리가 개막 4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호날두도 부상 방지를 이유로 FIFA시상식에 불참했다. 시즌 초반인 9월 30일 기준으로 ‘메날두’의 득점 합계가 5골에 미치지 못한 것은 2005~06시즌 이후 15년 만이었다. 두 선수의 내구성이 세월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기 시작한다는 증거였다. 지난 시즌 메시는 31골, 호날두는 37골을 각각 기록했다. 메시의 31골은 20세였던 2007~08시즌 이후 최소 기록이다. 레알 시절 시즌 평균 50골을 기록했던 호날두는 유벤투스에서 시즌 평균 32.5골로 득점력이 줄었다. 다른 선수, 특히 한국 나이 34세, 36세의 선수에게 시즌 30골 고지는 작은 기적일지 몰라도 메시와 호날두의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부진이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딸 모건은 꿈나라로 가기 전 아빠에게 “3,000만큼 사랑해(I love you 3,000)”라고 말한다. 어린 딸의 세상에선 ‘3,000’이 가장 큰 숫자였는가 보다. 축구 역사상 둘도 없을 슈퍼스타가 둘씩이나 동시대에 활약했다. 메시와 호날두는 온라인게임에서나 봤던 득점력, 여섯 명을 뚫어버리는 드리블, 2.56m 높이의 헤더 등 무수한 초능력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이제 ‘메날두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런 슈퍼스타의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었기에 역사적 관점에서는 우리도 대단한 행운아다. ‘메날두 시대’의 석양을 최대한 즐기길 바란다. 그리고 ‘메날두’에게 말해주자. 3,000만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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