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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넘볼 수(?) 없는 한국 만들기’

입력
2020.08.25 17: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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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츠 방한은 중국의 치밀한 사전 포석
한국은 中이 대마와 싸울 때 필요한 팻감
中의 한중 FTA 구애작전서 교훈 얻어야

서훈(오른쪽) 국가안보실장이 22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회담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훈(오른쪽) 국가안보실장이 22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제츠 중국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회담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지난 22일 부산에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장시간 회동을 가졌다. 작년 12월 초에 있었던 왕이 외교부장 방한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고 한다. 중국 외교 사령탑인 그의 행보에서 겸손과 자제의 외교 모드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한중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현재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의제에 불과하다. 치밀하게 계산된 중국의 한반도 포석이 양제츠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것이다. 목표는? 바로 ‘미국이 넘볼 수(?) 없는 한국 만들기’다.

한국은 중국에 있어서 늘 팻감 정도의 존재였다. 특히 미국이라는 대마(大馬)와 싸울 때 필요한 팻감 말이다. 6ㆍ25 전쟁이 그랬고 북핵 문제도 그렇다. 필요할 때 쓰고는 미련 없이 버린다. 압박이 강할수록 패감의 효용이 커지는 것일까? 화웨이 추가 제재와 산업스파이 색출,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추진과 중거리 미사일 한반도 배치 등 미국의 압박이 고조되자 베이징은 최근 버렸던 팻감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행태는 과거 한중 FTA 사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시장이 제일 크고 기술력도 최고 수준인 미국과 FTA를 먼저 하지 않고는 중국과 FTA를 할 수 없다”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부터 한미 FTA를 밀어붙여 이듬해에 협상을 타결시켰다. 당황한 중국이 들고 나온 것이 한중 FTA 카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뜸만 들이며 움직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말년에서야 협상 개시를 선언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협상이 진행되었다. 중국은 이 기간에 서울을 향해 구애 작전을 펼쳤고 한국 정부는 마치 중국과 연인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었던 양제츠와 부부장 왕이, 보시라이와 그 후임인 천더밍 상무부장은 물론 후진타오 주석이나 원자바오 총리도 한중 FTA의 조속한 추진을 한국 측에 끈질기게 부탁하였다. “구동존이(求同存異: 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둔다) 정신을 발휘해 조속히 한중 FTA 협상에 착수하기 바란다.” 2009년 12월, 부주석 취임 후 첫 방한을 앞둔 시점에서 시진핑 현 국가주석이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후 오바마 미 대통령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추진되고 여기에 일본까지 가입하자 중국은 한국의 TPP 가입 저지를 위해서라도 한중 FTA에 더욱 매달렸다. 그리고 2015년 6월 협상은 완료되었다. 석 달 후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전승일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듬해 1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가입했다. 밀월은 거기까지였다.

2016년 7월 한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으로 시작된 중국의 대한(對韓) 보복과 홀대는 외교적 상도를 넘는 가혹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베이징이 한국의 효용을 재평가라도 한 것일까? 사드 보복의 실질적 완화, 한중 FTA 2단계 협상 가속화, 한국 기업 일대일로 사업 참여 등 양제츠 정치국원이 부산까지 와 선물 보따리를 푼 것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작년 12월 4일 방한해 “소국을 괴롭히는 대국, 약소국을 괴롭히는 패권주의,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강요하는 국가, 다른 국가의 내정을 간섭하는 국가 행보를 중국은 계속 반대해 왔다”고 말했다.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낼 때에 비로소 네 형제의 눈에서 빼낼 티끌을 볼 수 있으리라”는 성경 구절을 그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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