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품은 평택호의 방주 ... "책 안 읽고는 못 배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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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품은 평택호의 방주 ... "책 안 읽고는 못 배길걸요"

입력
2020.08.26 04:30
수정
2020.08.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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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올해 초 완공된 경기 평택의 '아르카북스'는 집을 닮은 서점동(왼쪽)과 서점을 닮은 주택동(오른쪽) 두 채로 구성돼 있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정신적 안식을 얻고, 이웃과 함께 했던 집의 근원적 기능은 상실된 지 오래다. 집은 투자대상이자 2년에 한번씩 옮겨야 하는 임시 거처로 전락했다. 올해 초 경기 평택에 지어진 ‘아르카 북스’는 도시 생활에 심신이 지친 부부가 스스로를 회복하는 정신적 안식처이자 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집이다. 야산을 등지고 평택호와 마주한 집은 서점과 게스트하우스가 결합된 북스테이(Book+Stayㆍ대지면적 725㎡)와 그 옆에 건축주인 방정민(44), 김혜경(40) 부부와 초등학생인 세 자녀가 사는 주택(485㎡) 두 채로 이뤄졌다.


지붕과 벽이 연결된 천창과 전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과빛으로 서점 내부가 환하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책을 매개로 한 공간

부부는 대안교육을 꿈꿨던 교사였다. 몇 년 전 남편은 교편을 내려놓고 학원을 열었다. 하지만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길 원하는 학부모들만 모여들었다.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가르쳤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경쟁 위주의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뿐 아니라 부부도 지쳤다.

2017년이 전환점이 됐다. “물질적으로 부유해졌지만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삶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우연히 동네 엄마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 모임에 참가했다. “입시에 나오는 문학작품만 줄줄 외우다가 순수한 동심을 그린 책을 보니 굉장히 신선했고, 좋았어요. 그림책 공연이나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 등에도 나가고요. 그림책을 보면서 제 내면의 상처를 많이 치유 받을 수 있었어요.”

부부가 집을 짓게 된 것은 그림책 모임을 할 공간이 없어서였다. “카페는 시끄럽고 매번 지역의 문화센터를 빌리자니 번거롭고, 그림책 공연이나 낭독을 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어요. 마침 아버지가 방치하고 있던 땅이 있어 그걸 활용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뒤로는 야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평택호와 마주한 아르카 북스는 책을 매개로 한 공간이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땅은 주택 한 채 없는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였다. 주변에선 “한참 애 키우느라 돈 들어갈 시기에 아무 것도 없는 땅에 집을 짓는 건 무모하다”며 부부를 말렸다. “돈 벌 생각이었다면 못했을 거예요. 그림책 모임을 할 수 있고, 저만 읽는 게 아니라 저희 아이들에게도 그림책을 읽어줄 수 있는 집이면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정작 이들의 생계를 걱정한 이들은 모승민, 조병규 건축가(투닷 건축사사무소)였다. 이들은 책에서 해답을 찾았다. “인적 드문 곳에서 가족들만 살 것도 아니고, 지나가다 들를 곳도 아니라면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책이 중심이 되기보다 책을 매개로 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책을 읽을 수 있고, 책을 보면서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책에 푹 빠져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축주의 요구도 있었던 터였다.


집의 원형을 닮은 서점동은 호수 풍경을 담기 위해 동향으로 큰 창을 냈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서점동의 외관은 하얀 강판과 나무, 유리창이 띠처럼 엮인 모습이다. 가운데 목조 포치를 중심으로 왼쪽은 서점 겸 카페 공간이고, 오른쪽은 북스테이 공간이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책을 매개로 서점과 카페, 게스트하우스가 함께 있는 서점동은 박공 지붕의 커다란 직사각형 박스 형태다. 언뜻 보면 들판 위에 덩그러니 놓인 박스 같지만 평택호를 향해 시원하게 뚫린 전면 창에다 지붕과 벽 사이사이 끼어든 천창들까지 있어 외부 햇빛과 풍경을 아낌없이 집안으로 끌어들인다. 6m가 넘는 천장이 층 없이 뻥 뚫려 있어 개방감이 느껴진다. “건축적으로 틀을 짠 공간보다 최소한의, 단순한 형태의 공간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을 사용하는 이들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채워나가야 하는 공간이니까 이 공간은 정반대로 비워주고 싶었습니다.”(건축가)

서점이라지만 빽빽한 서고를 두지 않았다. 대신 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건 쏟아지는 햇빛과 여유로운 조망, 커피 향과 아이들의 나직한 소곤거림, 책을 보는 호기심 어린 눈빛과 책장 넘기는 소리 같은 것들이다. 한쪽 벽면에는 부부가 골라둔 그림책들이 표지가 보이도록 진열돼 있다. 소설 등 문학작품들도 가지런히 쌓여 있다. 책장 반대편에는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좌식 계단을 뒀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줄 다락도 있다. “처음에는 소란하던 아이들도 서점에 들어오면 이내 책에 관심을 보이고, 부모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책을 보더라고요. 이 공간이 그런 힘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건축주)


복층으로 설계된 서점동 북스테이 공간 1층에 있는 작은 서재.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입구의 목조 포치(별도의 지붕으로 덮은 공간)를 중심으로 서점과 게스트하우스 공간이 나뉜다. 4인 기준 한 가구만 사용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복층으로 설계됐다. 아래층엔 작은 서재가, 위층엔 책 읽기 좋은 천창이 있는 다락방이 있다. 서점이 문을 닫는 오후 6시 이후에도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손님들만큼은 건너편 서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책을 한번이라도 읽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유도한다.

북스테이에 머무는 이들은 오후6시 이후 서점동 전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갤러리나 카페 같은 디자인을 의도한 주택동의 외관은 책이 꽂혀진 책꽂이처럼 칸칸이 목조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가족과 이웃에게 안식처 같은 집

다섯 식구만이 오롯이 사용하는 주택동은 서점동에서 100m도 채 안 되는 곳에 사선으로 놓여졌다. 서점과 주택에서 각각의 호수 조망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서점의 겉모습이 집의 원형을 닮았다면, 주택은 거꾸로 갤러리나 카페처럼 보인다. 책이 꽂혀 있는 책꽂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두 채가 서로 옷을 바꿔입은 듯한 모양새다. “서점 안에서 주택을 봤을 때 서점이나 갤러리 같은 문화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고, 반대로 주택 내부에서 서점을 봤을 때는 집같이 포근한 느낌을 받도록 상보적으로 디자인을 했습니다.”(건축가)

집을 지은 뒤 가족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누가 여기까지 올까 걱정했지만, 하루 평균 수십 명이 오간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확실히 줄었지만 육체적 노동량은 불어났다. 하지만 마음 편히 좋아하는 책을 읽고, 고르고, 나눌 수 있게 됐고, 자연스레 건강도 나아졌다. 때로 부부는 시도 짓고 동화도 쓴다. 아이들도 달라졌다. 인근의 분교로 전학한 아이들은 논두렁을 지나 학교엘 간다. 아이들도 책을 가까이 두고 즐겨 읽는다. 다섯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도 부쩍 늘어났다.


주택동 1층에는 마당과 실내가 안팎으로 연결되는 주방이 중심에 배치됐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주택동 2층에서는 습지와 호수 등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최진보 건축사진작가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부부는 삶의 용기를 강조했다. “교직에 있을 때 1등급 아이들을 위해 나머지 아이들은 들러리를 서듯이 학교엘 다녔어요. 그런 아이들이 다른 방향을 찾도록 부모를 설득했지만, 용기가 안 난다고 하더군요. 이 집도 마찬가지예요. 이 집을 통해 획일적인 기준으로 삶을 살지 말고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 삶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집 이름, 아르카 북스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Arka)에서 따왔다. 자신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책을 매개로 한 안식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호수를 향한 목조의 서점동도 방주를 닮았다.

평택=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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