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남한의 설탕과 북한의 술을 맞교환하는 사업 계획을 사실상 철회했다. 사업 파트너인 북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개성무역회사)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리스트에 포함됐다는 기본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추진한 탓이 크다. 해당 회사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산하의 외화 벌이 업체다.
이번 사업은 북핵 관련 대북 제재를 우회하는 ‘작은 교역’을 강조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1호 사업이다. 여당 원내대표 출신인 실세 장관이 야심차게 추진한 사업이 시동을 거는 단계에서 좌초 위기에 몰린 것이다.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업무보고에서 통일부는 개성무역회사와의 사업을 철회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보위에 참석한 서호 통일부 차관이 "철회"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사업 추진이 현재로선 불가능함을 인정했다고 한다.
설탕과 술 맞교환 사업은 지난달 이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속도가 붙었다. 개성무역회사가 노동당 39호실 산하라는 사실을 통일부가 최종 확인하면서 곧바로 암초를 만났다. 지난 20일 정보위의 국가정보원 업무보고에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가의 통치 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와 미국 행정명령 13551호에 따른 제재 대상이다. 통일부가 이같은 사실을 언제 인지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결과적으로 '남북 대화, 교류, 협력, 인도지원'을 전담하는 부처라는 점은 다소 무색해진 셈이다.
이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부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위반을 피하는 물물교환 방식의 ‘작은 교역’ 구상을 밝혔다. 북한에 직접 현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술이나 물은 유엔이 지정한 북한 수출금지 물품도 아니므로 제재를 우회할 수 있다는 게 이 장관 논리였다. 정부는 남측(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의 설탕 167톤과 북측(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의 술 35종을 맞교환하는 남북 교류 협력 승인 여부를 검토해왔다.
사업이 순항하면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작지만 유의미한 물꼬가 될 것이었다. 청와대도 이 장관의 구상을 호평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정부 역점 사업이 추진 단계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통일부와 국정원과의 소통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정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24일 정보위 브리핑에서 “통일부와 국정원의 정보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오늘 비공개 회의에서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 교역'을 철회하게 된 진짜 사유가 무엇이든, 대북 제재 협의 기구인 한미워킹그룹이 ‘남북 교류의 걸림돌’이었다고 주장해 온 통일부는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24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공지문에서 “(남북 물물교환은) 아직 검토 중이기 때문에 ‘철회’라는 용어는 부적절하다. 해당 기업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계약내용 조정에 대해 협의 중”이라며 사업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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