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WTO 사무총장 1차 선거 보름 앞?
개인 역량은 월등하지만...?
미중 등 주요국 지지 유보 또는 미온적
지역 안배도 걸림돌
초읽기에 들어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가 막판까지 안갯속으로 치닫고 있다. WTO 사무총장 선발을 위한 1차 선거 캠페인이 보름 후(9월7일)에 종료되지만 각국 후보들은 여전히 혼전 양상이다. 이 가운데 한국을 대표해 출마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마지막까지 각국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유 본부장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통상 전문가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고 있지만 미국이나 중국 등 주요국들로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지역적인 안배 또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유 본부장, 개인역량 면에선 후보 중 압도적
2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상전문가들에 따르면 WTO 출범 직후인 1996년부터 지금까지 통상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유 본부장의 개인 역량은 현재 WTO 회원국들 사이에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압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 본부장의 정견 발표 당시 이례적으로 거의 모든 회원국들이 유 본부장을 향해 호감을 표시했다”며 “WTO 사무총장을 이번에는 여성이 맡아야 한다는 공감대도 회원국들 사이에 형성돼 유 본부장한테 더욱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제 연구기관인 독일 베텔스만 재단은 지난 16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후보 자격 평가에서 유 본부장을 총 후보 8명 중 상위 3명 안에 포함시켰다.
우리 정부와 국내 경제단체들은 1차 선거 캠페인 종료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유럽연합(EU)의 표를 확보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선거는 ‘1개국 1표’ 원칙으로 WTO 회원국(164개국) 중 유럽연합(EU, 27개국)이 가장 많은 표를 가졌다”며 “득표 순으로 후보를 추리는 1차 선거에서는 EU의 표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부 내에서는 통상정책총괄과, 세계무역기구과 등을 중심으로 유 본부장의 선거를 지원할 태스크포스(TF)팀이 결성, EU 등 회원국들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아웃리치(우호세력 접촉)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은 지난 19일 EU 대사단을 초청해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주요국 지지 부족, 지역 안배 여론 등 걸림돌
다만, 대외 변수는 유 본부장에겐 악재다. 차기 WTO 사무총장에 선출되기 위해선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미국은 현재 중국이 개발도상국 지위를 이용해 WTO에서 부당한 혜택을 누린다며 차기 사무총장에게 WTO의 대폭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의 밀접한 경제관계로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구심으로 유 본부장 지지에 미온적이다. 미국 언론에선 후보로 나선 나이지리아 출신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전 재무장관을 미국 정부가 차기 WTO 사무총장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 전문가는 “응고지 전 재무장관은 미국의 영향력이 큰 세계은행(WB)에서 총재까지 도전하며 승승장구했다”며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전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게도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먼저 한국이 WTO 사무총장을 꿰찰 경우 WTO 내에서 자신들의 입지 축소를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불거진 한일 수출입 분쟁으로 유 본부장의 사무총장 선출을 공공연히 반대하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중국은 절대로 유 본부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난 3월 열린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서 미국의 대리로 나온 싱가포르와 중국이 맞붙었을 때 한국이 싱가포르를 지지해 중국과 크게 골이 패였다”고 귀띔했다. WTO 총회 대사국으로 회원국 여론에 입김이 센 뉴질랜드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정상 간 통화에서 이례적으로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다”라는 형식적 답변밖에 얻지 못했다. 뉴질랜드와는 ‘한국인 외교관 성추행’ 문제로 양국 외교관계가 금이 간 상황이다.
지역 안배 문제 역시 유 본부장에겐 넘어야 할 산이다. WTO 사무총장 자리는 한 지역이 독점하지 않도록 암묵적으로 6개 대륙(아시아ㆍ유럽ㆍ남미ㆍ북미ㆍ오세아니아ㆍ아프리카)이 골고루 맡아 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엔 아프리카 또는 북미 지역이 차례라는 말이 나온다. 태국이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WTO 사무총장 직을 맡았기 때문에 같은 아시아인 한국이 맡기엔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최근 사무총장 후보 8명 중 1차 선거를 통과할 5명을 꼽으면서 유 본부장을 탈락자 명단에 넣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유 본부장이 1차 선거를 통과하면 차기 사무총장에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의 모든 외교력이 집중돼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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