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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희생하자는 주장은 당연한 것 같아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지도층이 앞장서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공직사회가 솔선수범해 고통 분담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낸 전례가 있다.
□IMF 외환위기 다음해인 1998년에는 전체 공무원이 일률적으로 월급의 10~20%를 삭감해 실업자 구제 재원 1조2,000억원을 조성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도 공무원 월급을 2년 연속 동결했다. 올해 3월 코로나19 위기가 확산되자 장ㆍ차관급 이상 공무원들이 4개월간 월급 30%를 반납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전통에서다. 외국도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복구를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자 3년간 공무원 월급을 5~10% 삭감했다.
□“공무원 월급 20% 깎아 2차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제안이 파장을 낳고 있다. 조 의원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도 국회와 정부의 공무원, 공공기관 근로자의 월급은 ‘1’도 줄지 않았다”며 4개월간 월급 20% 삭감을 제안했다. 그러자 그의 SNS는 삽시간에 “강제 갹출”, “전시 행정” 등 비판 댓글로 도배됐다. 한마디로 “왜 하필 우리냐. 공무원이 가장 만만하냐”는 반발 심리가 깔려 있다.
□갑작스러운 월급 삭감 주장에 대한 당혹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실제 코로나 방역 일선에서 고생하는 공무원의 상당수는 박봉에도 묵묵히 공직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조 의원 해명대로 고위직과 하위직의 분담 비율을 차등화할 필요가 있고, 자발적으로 삭감 논의가 이뤄지는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 분담을 통해 위기를 함께 극복해가자는 제안이 치도곤을 당할 정도로 몰상식한 주장은 아니다. 공무원을 ‘공복(公僕)’으로 부르는 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받드는 심부름꾼이 되라는 의미다. 보수 반납 제안을 했다고 “국회의원 세비부터 내뱉어라”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게 공복의 자세는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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