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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유방암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은 50세 이상의 여성 1,000명 중 10년이 지나 유방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4명이지만, 검사를 받지 않은 여성 중 유방암 사망자는 5명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이를 “유방암 정기검사가 유방암 사망률을 20% 감소시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10년간 정기 유방암 검사를 받고도 사망률은 고작 1,000명당 한 명 줄어든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통계에 함정’이란 책에 실려 있는 예이다. 이 책은 통계가 ‘숫자’라는 권위 뒤에 숨어 쉽게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한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19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 회의’에서 느닷없이 전세 통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조사 보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통계 마사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홍 부총리는 현행 통계는 확정일자를 받은 신규 전세 가구만 반영되기 때문에 계약 갱신 가구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전세가 인상률이 제한된 계약 갱신까지 포함하면 전세가 상승률이 낮아진다. 정부의 임대차 3법 시행이 전세가 급등을 불렀다는 비판을 모면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 지난달 23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의 답변에서 “이번 정부 들어 집값 상승률은 11% 정도”라고 답변했다가, 통계 기준 논란을 불렀다. 집값 상승률 체감도가 높은 중위매매가격이 아니라 주택종합 매매가 변동률을 제시해 수치를 낮춘 것인데, 그 기준을 적용해도 현 정부의 주택 연간 상승률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보다 12배가량 높다. 2018년에는 최저임금의 과감한 인상에도 1분기 소득분배가 역대 최악으로 나오자, 기존 조사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그 결과 소득분배에 대한 시계열 분석이 불가능해졌다.
□ 통계는 복잡한 현실의 극히 일부분만 보여주는 스냅 사진일 뿐이다. 하지만 그 통계가 쌓이면 쉽게 알아채기 힘든 중요한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통계의 일관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당장의 실패를 감추려 통계에 자꾸 손을 대다 보면 나중에 현 정부의 긍정적 업적마저 제대로 평가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정부의 ‘통계 과민’이 걱정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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