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힘들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다그치기보단 느긋하게 가자고 제 자신을 다독였죠."
-엄정화
'미쓰 와이프'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엄정화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쉽지 않았다. 지난 12일 개봉한 '오케이 마담'으로 100만 관객을 사로잡은 그는 '기다림의 미학'을 보란 듯이 입증하고 있다.
사실 엄정화는 손예진 김혜수 등과 함께 영화계에서 단독 주연이 가능한 몇 안되는 여성 배우 중 하나다. 이는 배역의 크고 작음을 떠나 남다른 티켓 파워를 보유한, 투자가 성사되는 힘을 가진 배우라는 뜻이다. 실제로 영화계는 여배우를 위한 시나리오가 흔치 않고, 설령 있다 해도 제작단계에서 엎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 손예진 역시 "배우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자기복제를 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며 "많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지만 남성 위주의 영화들이 어쩔 수 없이 많고, 항상 많은 여배우들이 '시나리오가 없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다 보니 선택의 폭도 좁아진다"며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엄정화도 '오케이 마담'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시나리오가 진짜 없긴 하다. 너무 기다렸고, 그만큼 반가웠던 시나리오였다"며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남자 주인공 영화보다 흥행이 잘 안된다는 인식 때문에 제작 자체가 잘 안 되는 게 현실인데, 이야기가 좋고 공감할 수 있다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양한 히트곡을 내놓으며 가수로 활약했던 엄정화는 연기 활동에 있어서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해운대'(2009)를 통해 천만 배우 대열에 합류했고, '댄싱퀸'(2012)으로 400만 관객을 웃고 울리며 흥행에 성공한 그다. 실제론 화려한 싱글이지만 30대 주부의 고단한 삶을 표현하며 가감없이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쓰 와이프'(2015)에서도 그랬다. 잘 나가는 싱글 변호사 연우 역을 맡은 엄정화는 우연한 사고로 인해 남편과 애 둘 딸린 아줌마로 한 달간 대신 살게 되면서 겪는 많은 일들을 섬세한 감정 연기로 표현했다. 골드미스와 현실주부를 오가며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산 것이다.
새 영화 '오케이 마담'은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난데없이 비행기 납치 사건에 휘말린 부부가 평범했던 과거는 접어두고 숨겨왔던 내공으로 구출 작전을 펼치는 액션 코미디물이다. 꽈배기 맛집 사장 미영 역을 맡은 엄정화는 출연을 결정하자마자 액션스쿨에 다니며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상대역도 결정되기 전에 액션스쿨에 등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액션 연기가) 어설프면 내가 못 견딜 것 같았다"는 그의 말이 넘치는 열정을 대변한다.
극 중 엄정화는 비좁은 기내 공간에서 맨몸 액션은 물론 밧줄이나 카트, 스카프 등을 활용해 색다른 액션을 선보인다. 다소 낯선 '꽈배기 액션' 연기에 대해 그는 "(미영이) 꽈배기 장사를 하기 때문에 빵을 반죽하고 모양을 만드는 행동을 바탕으로 액션을 하는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미영의 현실 밀착 액션을 선보인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엄정화의 액션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예스 마담' 시리즈를 오마주한 이철하 감독의 영향이 컸다. 부부 호흡을 맞춘 박성웅도 "엄정화 배우의 액션을 보면 '예스 마담'의 양자경이 생각날 정도였다. 그만큼 활기 넘치고 시원시원한 액션을 보여줬다"고 감탄했다.
배우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액션 연기를 펼칠 날만 기다렸다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소원을 이루게 됐다. 혹자는 50대인 엄정화의 나이를 언급하며 놀라워하지만, 정작 본인은 여유로운 모습이다. 나이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현재를 즐기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즐기기만 한 게 아니라 피나는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내왔다. 3년 전, 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 촬영장에서 만난 엄정화는 작품의 막장 논란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면서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애쓰던 모습이 기자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한 백조가 물속에선 엄청난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엄정화의 성공도 거저 얻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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