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나 전세자금대출 금리보다 낮아지는 기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기준으로 삼는 시장금리가 주담대 쪽보다 더 낮아졌기 때문인데, 금융당국은 매달 2조원 넘게 급증하는 신용대출 증가세를 우려하고 있다.
대출의 상당 부분이 주택 관련 용도로 활용되면서 부동산 대출을 조여온 금융당국이 이번엔 신용대출에도 칼날을 들이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례적 금리역전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지난 14일 기준)는 신용등급에 따라 연 1.74~3.76% 수준이다.
이는 주담대(연 2.03~4.27%)나 전세대출 금리(연 1.55~3.81%)보다 더 낮은 편이다. 담보 없는 신용대출 금리가 주담대,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밑도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높은 경우에는 간혹 신용대출 금리가 더 낮을 수 있지만 최근처럼 신용 1~2등급 직장인 상당수가 주담대보다 낮게 신용대출을 받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금리 역전’은 우선 기준이 되는 금리가 낮기 때문이다. 주담대보다 기간이 짧은 신용대출은 통상 단기 채권 시장금리를 사용하는데, 올해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로 단기물 금리가 크게 내려갔다. 실제 신용대출이 기준 금리로 삼는 금융채 6개월물 금리는 1년 전보다 0.719%포인트 떨어진 데 반해, 주담대에 사용되는 금융채 5년물은 0.04%포인트 하락에 그쳤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공세에 맞서 시중은행들이 금리인하 경쟁을 벌이는 것도 신용대출 금리 하락에 일조했다.
주택대출 우회로?
금리가 낮아지자 신용대출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3일 기준 121조4,884억원으로, 이달 들어 1조2,892억원이나 늘었다. 이미 지난 6월과 7월 두 달 연속 2조원 넘게 늘며 사상 최대 증가세를 보였는데, 이달에도 2조원을 가볍게 넘길 태세다. 여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개인과 영세 소상공인의 긴급 자금 수요에, 빚을 내 주식에 뛰어드는 동학개미의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러나 상당 부분은 주택자금 마련을 위한 우회로라는 해석이 나온다. 신용대출의 경우 주담대에 비해 한도가 높진 않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출규제로 주담대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축소되자 수요자들이 부족한 금액을 신용대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로 메우면서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은행이 신용대출 심사 때 자금 용도를 확인하긴 하지만, 돈에 꼬리표가 있는 게 아닌 만큼 시차를 두고 주택을 구입한다면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
한은 역시 최근 “6ㆍ17 대책 직전 활발했던 아파트 거래의 매매대금, 지난달 늘어난 수도권 아파트 분양 계약금, 전셋값 상승에 따른 자금 수요 등이 신용대출 증가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정부가 조만간 신용대출마저 규제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다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신용대출 증가가 코로나로 사정이 어려워서인지, 주식투자 또는 부동산 투자용인지 상황을 더 봐야 한다”며 “다만 코로나19로 금융권에 돈을 더 풀어주라고 하는 마당에 신용대출을 억제하라고 이야기 하는 건 (정책방향과) 서로 상충된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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