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비가 쏟아지고 또 퍼부었다. 최장기간 장마에 최악의 물난리가 났다. 2011년 호우와 태풍으로 78명이 사망·실종된 이후 9년만에 가장 많은 50여명이 희생됐다.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에서 홍수와 산사태가 이어졌고 많은 국민이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산림청이 제주도를 제외한 전 국토에 산사태 최고 경보인 ‘심각’ 단계를 발령한 것도 드문 일이었다.
7월이 6월보다 덜 더운 이상기후에다 신종코로나는 심각한 재유행 조짐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폭우피해뿐 아니라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민심이 흉흉해진 것이야말로 피부로 와 닿는다. 여러 재난과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전야 같은 느낌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천재지변이 닥치며 정치급변이 일어난 전례가 적지않다. 1976년 중국은 격동의 한해였다. 허베이성 탕산시에 규모 7.5의 지진(24만명이상 사망)이 났고 직후 공산당 정권 핵심의 유고사태가 이어졌다.
1984년 가을 서울 대홍수도 비슷한 사례다. 수도 서울에서 상상을 초월한 물난리가 난 건 필자의 기억으로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안양천변의 목동·신정동부터 시작해 망원동·합정동·풍납동 아파트단지가 물에 잠겨 주민들이 고무보트, 구명정, 뗏목을 타고 탈출하는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한강본류가 홍수경보인 10.5m를 넘어선 상황은 당시가 유일했다. 초중고, 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진 초대형 수해였다.
그 해 연말을 넘기고 1985년 2·12총선에서 전두환 정권은 붕괴의 첫발을 내디뎠다. 국내외 여론에 떠밀리듯 재야인사들을 해금(解禁)시키자 YS와 DJ측을 비롯한 민주진영은 총결집해 한달도 안돼 신민당을 창당, 관제야당 민한당을 제치고 돌풍을 일으켰다. 87년 민주화 쟁취의 출발점을 이때부터 찾을 수 있다. 큰 재해재난 뒤 정치격변이 뒤따른 셈이다.
역설적으로 민주진영의 법통을 이어받은 현 여권이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40%선 마저 무너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여야 당 지지율도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이후 처음으로 역전됐다. 역사란 과연 동적인 존재인가 보다.
당장 부동산정책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임대차 3법 개정으로 세입자가 보호받게 될지, 더 큰 어려움에 몰릴지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실소유자는 세금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살기만 했을 뿐인데, 어긋난 정책으로 집값은 있는대로 올려놓고 세금부담은 국민에게 지우고 있다. 갭투자는 놔두고 ‘갭투기’는 잡아야 할 것이다. 중산층을 위한 정책으로 타깃을 확대해야 한다. 현 집권진영의 원형인 DJ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을 강조해왔다. 북한 운운하며 “다주택자는 때려잡아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범여권내 다양성을 확대하는 게 해법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왕성한 이슈파이팅에 나서며 이낙연 의원과 차기경쟁을 본격화했다. 여권지지층으로선 환영할 일이다. ‘친문 적통’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재판’의 족쇄를 벗어난다면 더 볼만해질 것이다. 친문과 비문이 망라돼 국정현안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펼치면 국민주목도는 커지고 그 과정에서 당의 배타성은 극복될 수 있다. 민심이반은 이미 시작됐다. 정치격변을 막으려면 지금 변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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