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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 건너 온 일본 민간인 70만명...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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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 건너 온 일본 민간인 70만명... 그들은 누구인가

입력
2020.08.18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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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가 정착한 민간인들은 식민제국의 팽창과 유지를 담당하는 주축이었다. 서울 명동에 있는 롯데 영플라자 백화점의 전신인 초지야백화점을 세운 고바야시 겐로쿠도 그런 인물이었다. 도서출판 길 제공

일제강점기 시기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가 정착한 민간인들은 식민제국의 팽창과 유지를 담당하는 주축이었다. 서울 명동에 있는 롯데 영플라자 백화점의 전신인 초지야백화점을 세운 고바야시 겐로쿠도 그런 인물이었다. 도서출판 길 제공



서울 명동에 있는 롯데 영플라자 백화점의 전신은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ㆍ1867~1940)라는 일본인이 세운 '초지야(丁子屋)' 의류상점이다. 일본 교토 인근 지방 출신 상인인 고바야시는 1904년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잡기 위해" 조선에 뼈를 묻겠다는 다짐을 안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군이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한 러일전쟁 때였다.

1910년 일제강점기에 접어 들면서 초지야는 서울 4대 백화점 중 하나로 성장했다. 부자가 된 그는 백화점에 조선인을 다수 고용하는 한편 거액의 자선사업도 벌이면서 식민지 조선인들의 환심을 샀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고바야시는 지역의 승려를 보살피는 등 자칭 '불교적 상도(商道)'라는 영업방식으로 조선에 스며들었다. '조선의 발전에 대한 공헌'을 인정해 히로히토 일왕은 그에게 훈장을 하사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한 1876년부터 1945년 패전 때까지 고바야시처럼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민간인은 7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엔 고바야시와 같은 상인도 있었지만 목수와 농민, 가정부, 매춘부, 낭인 등 하층민도 많았다. 출신은 달랐지만 목적은 비슷했다. 본국에서는 이루기 힘든 꿈과 야망을 조선에서 대신 이루겠다는 것.

조선에 도착한 정착민들이 고바야시처럼 조선인에 우호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본제국의 통치체제에 적극 협조하면서 착취에 가담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본토 사람에 비해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여길 땐 조선인과 손 잡고 조심스럽게나마 일본 정부의 정책에 맞서는 '야누스적 동맹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최근 출간된 '제국의 브로커들'의 저자 우치다 준 미국 스탠퍼드 대학 동아시아연구센터 소장은 그런 정착민들을 책 제목과 같은 '제국의 브로커'라고 규정했다.

브로커의 흥망성쇠는 일본 제국주의 역사와 함께 했다. 제국주의가 잘 나갈 땐 번영했으나, 패전과 함께 모든 재산을 조선땅에 남겨두고 빈털털이로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고생했다는 소리를 듣기보다 무관심과 냉대 속에 방치됐다. "조선 땅에서 뿌리째 뽑혀 나간 정착민들이 일본의 공식적인 기억에서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생각할 때 우선 떠올리는 건 총칼을 든 군경이나, 총독부 관료다. 전쟁과 식민 침략에 책임을 져야할 국가관료들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했다.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에 맴돌던 브로커들의 존재는 학계에서도 주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식민지배는 국가권력에 의한 단일하고 독재적인 방식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방식을 통해,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간 민간인들 역시 식민제국의 팽창과 유지를 담당하는 주축이었다. '정착민 권력'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할 때 비로소 36년간의 식민통치기간이 입체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의 인식은 국내 역사학자들의 견해와도 일정부분 일치한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정착민들은 단순 생계 유지차원에 머물렀다고 볼 순 없고, 지방자치기구를 운영하며 지역 통치에 적극 나서는 면모를 보였다"면서 "간접통치를 택했던 영국, 프랑스 등 서구와 다른, 일본의 직접통치 방식에서만 드러나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2011년 출간돼 이듬해 미국역사학회가 수여하는 권위 있는 '존 킹 페어뱅크'상을 받은 이 책이 9년 만에 한국어 판으로 출간된 건 의미가 싶다. 광복 75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조선총독부 vs 조선 민중’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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