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 없는 위기, 재정비 필요"
디지털 전환 추진할 새 판 짜기
"전문성 갖춘 젊은 리더 지속 발굴"
"모두가 인정하던 2인자가 떠난다니 충격이다."
1979년 입사 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롯데그룹의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 사업확장 등 핵심 경영 전략을 주도해 '신동빈의 오른팔' '신동빈의 브레인'으로 불리던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부회장)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에 한 롯데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오프라인 의존도가 높은 기존 유통 사업모델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신동빈 회장과 함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던 그의 용퇴는 롯데가 처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결정이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13일 오후 긴급 이사회를 연 롯데는 황각규 부회장의 퇴진을 포함한 롯데그룹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롯데의 정기 임원 인사는 매년 연말이지만 이례적인 8월 인사를 단행한 데는 롯데그룹을 이끄는 두 축인 쇼핑과 화학 실적 악화에 따른 책임론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 부회장은 그룹 내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젊은 리더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롯데쇼핑은 올 2분기 매출(4조459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9.2% 줄었고, 영업이익(14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98.5%나 내려앉았다. 1분기를 합친 상반기 실적은 매출 8조1,226억원, 영업이익 535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8.8%, 82%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임시휴점과 단축영업,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제한 등의 악재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매출 부진이 심화했다. 롯데슈퍼는 전년 동기보다 적자 규모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손실을 면치 못했고, 롯데백화점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못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롯데 관계자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유통 부문 실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황 부회장이) 용퇴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경영진이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넘기 위해 조직을 빠르게 재정비해야겠다는 결단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신동빈 회장이 수년 전부터 '디지털 전환(트랜스포메이션)'을 강조하며 뚜렷한 변화를 주문해왔음에도 경영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 역시 이사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이다. 운영을 효율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정리하고 있는 기존 계획과 별도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통해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황 부회장은 부회장직은 내려놓지만 롯데지주 이사회 의장 역할은 계속 수행한다. 롯데지주 부회장 자리에는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사장이 내정됐다. 하이마트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올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51.1% 증가한 693억원의 영업이익 달성에 성공했다. 노트북PC 판매량 증가 등 비대면(언택트) 트렌드의 수혜를 입기도 했지만, 부실한 오프라인 점포는 과감히 정리하고 핵심 점포를 체험 공간으로 재정비하면서 온라인 채널을 강화하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신동빈 회장이 강조해 온 디지털 전환과 방향성을 같이 하면서 수익성도 확보한 셈이다. 롯데 관계자는 "안정적인 성장을 끌어 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라며 "롯데백화점으로 입사 후 경영지원, 영업, MD(상품기획자)까지 두루 거쳤기 때문에 롯데의 혁신과 위기 극복을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표이사 신규 선임과 함께 롯데지주 내부 조직개편의 방향성도 디지털 전환 가속으로 정해졌다. 롯데지주의 기존 경영전략실은 '경영혁신실'로 개편되며 경영혁신실장으로 67년생 이훈기(53세) 롯데렌탈 대표이사(전무)가 임명됐다. 그는 렌터카에 통신 기술을 접목한 차량관리 종합 솔루션 개발 등을 주도하며 디지털 전환 성과를 올린 바 있다. 윤종민 현 경영전략실장은 롯데인재개발원장으로, 김현수 롯데물산 사장은 롯데렌탈로 이동한다. 류제돈 롯데지주 비서팀장이 롯데물산 대표이사를 맡게 된다. 롯데하이마트 신임 대표이사는 황영근 영업본부장이 맡는다.
롯데 측은 "전문성이 있는 새 리더들을 계속해서 발굴해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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