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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와 육아로 다툴 때마다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아내

입력
2020.08.1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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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는 결혼 6년차 신랑으로 아내와 현재 다섯 살 된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생긴 초기에는 육아휴직을 한 아내가 주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했던 터라 크게 싸우지 않았는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다시 맞벌이를 하게 된 이후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일로 다툼이 잦아졌습니다.

다투다 감정이 격해지면 아내는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주변 물건을 집어 던지고 욕을 하고 저를 밀칩니다. 급기야는 이혼을 언급하며 저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싶다는 험한 말도 합니다.

부끄럽지만 신혼 때 아내에게 제가 손찌검을 한 적이 있습니다. 크게 반성하고 부부싸움 도중 지켜야 할 원칙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아내는 예전 자기가 받았던 상처를 제게 되돌려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내는 화목하고 자유분방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가부장적인 제 집안과 달리 아내 집은 가족끼리 정말 살갑게 지냅니다. 독립적인 제 아내는 외국에서 1년간 산 경험도 있습니다.

저는 유년기 때 아버지와 큰 갈등은 없었지만, 가치관 차이로 결혼 뒤엔 몇 번 충돌했습니다. 아내가 저를 ‘오빠’라고 부르자, 아버지는 결혼했으니 ‘00씨’라 불러야 한다고 핀잔을 줘서 제가 아버지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안부전화도 안한다며 아내를 혼내서 제가 아버지와 다툰 적도 있고요. 지금은 큰 갈등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육아 문제는 평일에는 아침에는 아내가, 저녁에는 제가 맡습니다. 설거지나 나머지 집안일은 아내가 하는 편이지만, 서로 자기 부담이 더 크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주말에는 제가 하루종일 아이를 밖에서 돌봐도 아내는 제게 집안일부터 들이밉니다. 밖에서 노는게 뭐가 힘드냐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는 섭섭합니다.

저와 아내 둘다 독립적인 성격이라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고 아이를 키웠어요. 아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아내가 산후우울증을 겪을 만큼 힘들었어요. 당시 제가 많이 돕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그 시절 피해의식 때문에 아내가 보상받고 싶어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불안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아내도 걱정입니다.

이종건(가명ㆍ37ㆍ회사원)


종건씨,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결심하면서 더 행복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세상 전부를 얻은 것 같은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기쁨이 큰 만큼,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도 큽니다. 종건씨와 배우자, 두 분도 그럴 거예요.

아내가 결혼해서 불행해진 건 아니지만, 결혼 전보다 불편한 건 많아졌을 겁니다. 부부문제는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하지만, 종건씨에게 도움이 되려면 아내의 내면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아내는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딸 아들 차별하는 분위기도, 여자라는 이유로 여러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경험도 없었을 겁니다. 공부도 원하는 만큼 했고, 해외 여행도 자주 다녔을 거예요.

그런데 결혼 이후 달라졌을 거예요. 가부장적인 시아버지에게 여러모로 상처를 받았을 거예요. 단 한번이라지만 남편에게 맞기까지 했어요. 그건 배우자 사이에서 절대로 있어선 안되는 행동이지요. 얼마나 놀랐고, 또 굴욕적이었을까요. 독박육아 과정도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지금도 육아와 가사에서 손해본다 생각할 거예요.

그렇다고 아내가 무책임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육아, 가사 문제 등을 잘 해내면서도 아내 마음은 너무 불편할 겁니다. 결혼 이전에 비해 모든 측면에서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독립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다 소화내느라 힘들었을 거예요. 그게 자꾸만 쌓이면서 억울해지고, 그 억울함이 건드려지면 격분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내의 폭언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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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특히 육아와 가사를 공동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분 같습니다. 직장을 다니다 어쩔 수 없이 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키웠던 일이, 아내에게는 너무나 힘들었을 거예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들은 절대 힘들다고 말 못합니다. 내 자식 내가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남편이 빨리 퇴근한다 해고 그 시기 육아는 오로지 아내의 몫이었을 겁니다. 산후우울증도 있었다면 아내에게 특히 그 시기가 가혹하리만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감정이 쌓이면요,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억울해집니다. ‘왜 나만 이렇게 고생하나' 싶은 거지요. 두 분이 가사와 육아 문제에서 부딪히는 건 아내가 본인이 더 많이 했고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거예요.

종건씨도 억울할 거예요. 이전 세대에 비해서는 훨씬 자상하고 가부장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거예요. 실제로 이전 세대와 같은 남성의 특권을 많이 내려 놓은 세대이기도 합니다. 종건씨도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에게 씌워진 유교적 굴레가 부당하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나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신혼 때 아내를 손찌검한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이지만, 깊이 반성하며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당신이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신도 열심히 노력했을 겁니다. 그래서 억울한 마음이 클 거예요. 내 딴엔 한다고 하는데 그걸 몰라주니 억울하지요.

문제는 서로 억울한 마음만 크다는 거예요. 더 큰 문제는 그 억울한 마음 때문에 상대에 대한 고마움이 없어진 거예요. 고마움이 없으면 불통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서로 고집스럽게 자기 방식을 고수하려 들 거예요. 상대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언제나 내가 더 억울하니까 내가 더 많이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종건씨가 주말에 아이와 놀아주고 들어와도 아내가 또 집안일을 시키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걸 또 안 들어주면 다시 억울해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그렇게 억울함에 억울함이 쌓이다보면 그 억울함으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는 태도까지 보입니다. 아내의 폭력적인 행동도 짐작해보면, 그 자신 또한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본인이 결혼 뒤에 힘들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는 자신의 푹력적인 언행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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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억울함도 잘 압니다. 아버지와 달리 가부장적이지 않고, 자발적으로 가사와 육아도 분담했습니다. 하지만 신혼 초 아내를 때린 잘못 때문에 아내의 폭력적인 언행도 꾹 참았을 겁니다. 그런데 꾹 참다보니 억울해지고, 그 억울함이 쌓이다보니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어느 순간 사라졌을 거예요.

이제는 고마움을 다시 한번 찾아보세요. 찾아낸 그 고마움을 표현해야 합니다. 억울하니까 당연한 게 아니라, 애써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예컨대 아내가 아이와 놀아주고 들어온 당신에게 ‘놀다 왔으니, 집안일도 해야지’라고 하는 게 당연함이라면, ‘당신이 아이와 밖에 있다 와줘서 내가 잘 쉬었어, 아이와 함께 있다 와서 힘들겠지만 집안일도 조금 도와주면 안 될까’라고 접근하는 건 고마움입니다.

종건씨, 제게 도움을 요청했지요. 그것처럼 아내에게도 먼저 고마움을 표현해보세요. 설거지를 해야 할 때도 ‘내가 이런 것까지 하잖아’라고 접근하기보다 ‘평소엔 당신이 많이 하니깐, 이번엔 내가 해야지’라고 한다면 두 분 관계가 훨씬 좋아질 거예요. 그리고 아내를 때린 것도 다시 한 번 더 진심으로 사과할 필요도 있습니다. 아내도 그렇게 한다면 좋겠지만, 모든 변화와 새로운 시작을 당신이 먼저 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내의 폭력적인 언행은 아이에게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려 갖은 애를 쓰다가도 욱해서 소리 지르고, 폭발하고, 공격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공포감을 주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아이를 중심으로, 아이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제일 중요한 문제로 해서 부부간 대화를 하고 노력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예요. 아내도 자신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만큼은 원치 않을 테니까요.

오은영의 화해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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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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