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물어본 적 있나요?

입력
2020.08.12 16:00
수정
2020.08.12 16:41
25면
0 0
이지선
이지선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물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 반대의 경우가 자연스럽다고 느껴질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박사과정 중에 시각장애인의 길안내에만 의지해 3시간 동안 운전을 한 적이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점자연구소(Braille Institute)에서 1965년 부터 매년 개최하는 점자 자동차 경주(Braille Rallye: 브레일 랠리)에 참가했었다. 이 경주는 우리가 보통 자동차 경주하면 떠올리는 스피드를 겨루는 경주가 아니라 운전자와 동승한 길 안내자가 한 팀이 되어서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속도로 달리는 TSD(Time-Speed Distance) 랠리 중 하나로, 일반도로에서 이루어진다. 길 안내자가 읽어주는 로드북의 지시에 따라 지정된 경로로 여러 곳의 체크포인트를 일정한 속도로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자와 길 안내자와의 의사소통과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 브레일 랠리가 보통의 TSD랠리와 다른 특별한 점은 바로 길 안내자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점과 로드북이 점자로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점자 연구소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학생들이 길안내자로 참가하고 이 학생들과 함께 하고자 자원한 비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차를 가지고 참가하는 자동차 경주 축제이다. 스페셜카를 가진 동호회 회원들도 많이 참가하기 때문에 영화 ‘백투더 퓨처’에 나오는 차처럼 꾸민 차를 포함해 아주 특이하게 꾸민 자동차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나는 ‘린지’라는 대학생과 한팀이 되었다. 내가 운전을 하면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면, 나는 눈을 아무리 크게 뜨고 봐도 읽을 수 없는 점자로 된 로드북을 읽어 주며 차근차근 길을 알려주었다. 운전은 내가 하지만 경주를 잘 마치려면 오로지 길안내자인 린지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출발해 오렌지카운티의 애너하임까지 가면서 중간중간 여러군데의 체크포인트를 거쳐 가야 하기 때문에 3시간이 넘는 레이스였는데, 나와 린지는 열심히 체크포인트들을 다 찾아가긴 했지만, 중간중간 수다를 떠느라 길을 좀 헤매는 바람에 주행시간이 너무 길어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는 못했다.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들 개개인은 이 행사를 준비하며 점자 학습에 대한 동기유발도 되고 자신감도 키우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이 경주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일방적으로 비장애인은 도움을 주고 장애인이 수혜자가 되는 보통의 장애인과 함께하는 행사를 반대의 상황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자동차경주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경험을 하며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를 갖게 된다. 연구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날 경주에 참가한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화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전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과 부정적 인식이 의미있는 만남과 접촉 경험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접촉가설(contact hypothesis)을 바탕으로, 이 브레일 랠리는 이 가설에서 제시하는 인식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는 동안 비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의 장애(disability: 능력없음)가 아니라 점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ability)을 포함해 그가 가진 많은 ‘할 수 있음’을 보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활용하는 보조 기구와 환경이 주어지면 시각장애는 시력이 없는 것일 뿐, 결코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그런 기회조차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함께 노력하는 활동을 해보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함께하는 동안 장애인을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여기던 생각에서 이제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장애인을 볼 때 장애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보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도 장애인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로 모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웃이 되고, 직장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는 일이 많이 생기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