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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도 안 담긴 춘천시 매뉴얼... 대가는 컸다

입력
2020.08.12 17:00
수정
2020.08.12 17:5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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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 의암호 선박 전복사고로 순직한 고(故) 이종우 경감의 영결식이 12일 오전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춘천 의암호 선박 전복사고로 순직한 고(故) 이종우 경감의 영결식이 12일 오전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의암댐 선박 전복사고로 순직한 고(故) 이종우(55) 경감의 영결식이 열린 12일 춘천 호반체육관. 폭우와 거센 물살 속에서도 주민안전을 위해 기꺼이 출동한 고인을 보내는 길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경감의 친형은 "뭐하러 그리 빨리 가느냐"며 흐느끼다 이내 주저 앉았다. "가족들 걱정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마지막까지 수풀을 잡고 계셨다"는 후배 경찰관의 고별사에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는 오열했다. 동료들은 "차가운 물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힘드셨습니까. 빨리 찾아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자책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22년간 소양호과 의암호를 굳게 지키던 베테랑 경찰관은 세상과 이별했다. 최소한의 안전 매뉴얼만 있었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참사였기에 허무한 이별이 더욱 안타깝다.

이 경감을 포함해 4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명이 실종된 지난 6일 의암호 선박 전복사고는 허술한 안전지침에 부른 인재(人災)이자 관재(官災)다.

춘천시가 갖고 있는 '내수면 유ㆍ도선사고 현장조치 매뉴얼'엔 '댐이 방류에 들어가면 유역에 선박을 띄우거나 작업을 해선 안 된다'는 기본 중의 기본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당시 의암댐과 춘천댐, 소양강댐이 일제히 거센 물살을 뿜어내는 상황에서도 의암호 인공수초섬 고정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다. 무리한 작업은 업체 보트와 경찰정, 기간제 근로자들이 탔던 환경선이 전복되는 사고로 이어졌다. 악천후 속에서 14억원짜리 인공수초섬을 지키려던 대가는 컸다.

댐 본체는 한국수력원자력이, 물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지자체가 맡는 등 관리도 제각각이었다. 비단 의암댐 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든 같은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관리 사각지대가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허술한 매뉴얼은 그대로였다.

이를 손보기는커녕 사고 발생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참사를 부른 인공수초섬 작업 경위에 대한 업체와 춘천시의 공방은 여전하다.

업체 측은 문자메시지 등을 근거로 댐 방류 중에도 춘천시의 지시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춘천시는 '절대 출동하지 말고, 기간제 근로자를 동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찰은 이날 춘천시청과 수초섬 설치 관리업체 등 11곳을 압수수색 했다. 누가 작업지시를 내렸는지와 당시 대처 상황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하루 빨리 참사 원인과 책임이 규명되길 바랄 뿐이다.

의암호 참사 당일 현장을 찾은 정세균 총리는 "국민께 부끄러운 사고"라고 고개를 숙였다. 허술한 안전 매뉴얼이 부른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에 대한 사과였다. 이번 참사는 국민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사고 공화국'이란 단어를 복원시켰다.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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