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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적 "예스" 안하면 성폭행... '비동의 강간죄' 이번엔 도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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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적 "예스" 안하면 성폭행... '비동의 강간죄' 이번엔 도입될까

입력
2020.08.12 17:3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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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정의당 의원, 민주당 의원들과 법안 공동 발의
폭행ㆍ협박 여부가 아니라 동의 여부로 강간 판별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 곳곳에 붙인 비동의 강간죄 관련 대자보. 류호정 의원 페이스북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 곳곳에 붙인 비동의 강간죄 관련 대자보. 류호정 의원 페이스북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12일 대표 발의했다. 비동의 강간죄는 폭행ㆍ협박 여부가 아니라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성관계냐 성폭행이냐의 기준으로 삼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개념이다.

초선인 류 의원의 1호 법안으로, 김상희 국회 부의장,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20대 국회에선 무관심속에 법안이 폐기됐지만, 21대 국회에선 처리될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이다.


류호정 정의당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호정 정의당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명시적 동의 없으면 성폭행”... 강력한 류호정안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피해자가 공포심 등 때문에 ‘적극적인 반항’을 하지 않으면 강간이 성립하지 않는다. 류 의원은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조건을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경우 △폭행, 협박 또는 위계, 위력에 의한 경우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 경우로 확대했다.

류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폭행협박으로 간음한 경우에만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법원의 해석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강간 피해 상담 중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던 경우가 71.4%에 달한다.

류 의원은 또 '위계, 위력에 의한 경우' 조항에서 ‘업무상’이라는 요건을 삭제했다. 의사와 환자, 종교인과 신자 등 업무 관계가 아닌 경우에도 권력형 성범죄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법문 속 ‘간음’이라는 단어는 모두 ‘성교’로 바꿨다. '간음'은 '부부가 아닌 남녀가 맺는 성관계'를 뜻해 의미 폭이 좁았다.

류 의원 안은 지난 6월 21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발의된 백혜련 민주당 의원의 비동의 강간죄법보다 범죄 요건 범위를 확장했다. 백 의원 안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경우"(노 민즈 노 룰ㆍNo means No rule)를 기준으로 삼았다. 류 의원 안은 "명시적 동의가 없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 ‘예스 민즈 예스 룰ㆍYes means Yes rule’에 가깝다.


20대 국회에선 폐기... 민주 ㆍ통합당, 호응할까

류 의원은 법안 공동 발의를 요청하며 본인을 제외한 21대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인 김상희 부의장에게는 직접 찾아가 법안 의의를 설명했고, 국회 의원회관 곳곳에 대자보 100장을 붙여 의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비동의 강간죄는 2018년 미투 운동과 그해 8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주목 받았다.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10개나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거치지 못했다. 의원들의 떨떠름한 반응 때문이었다. 지난해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 8개 법안이 상정됐지만, “법무부와 법원행정처가 여러 논의를 잘 정리해서 제출한 다음에 다시 논의하자”고 한 뒤 논의를 접었다.

비동의 강간죄 입법 신중론자들은 ‘동의’에 대한 사법부의 자의적 판단 가능성, 무고와 과잉 처벌의 우려를 근거로 든다. 남성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정의당이 21대 총선 당시 정의당에 투표한 유권자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여론조사에서도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배복주 정의당 여성본부장은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가 강간까지 이르렀는지 여부는 수사 기관이 입증할 문제이며, 동의 여부에 대한 판단에 대해선 사회적 인식과 맞물려 법원 판결과 함께 기준이 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이미 국제적 추세다. 2018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도 한국 정부에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류 의원 법안을 공동 발의한 정춘숙 여성가족위원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이번에는 초선 의원들도 많고, 그간 여러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입법이 가능해졌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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