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없이 지나가라" 좋은 이름 짓는 뜻과 달리
셀마·루사·매미,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 남겨
제5호 태풍 장미는 긴 장맛비에 축 처진 장미꽃처럼 한반도를 미처 벗어나기도 전인 10일 오후 5시 사그라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잦은 건 아닙니다. 이름에 속을 수 없는 이유지요. 태풍은 순해 보이는 이름과 달리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기고 가기 때문인데요.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87년 이후 역대 최악의 태풍은 셀마입니다. 당시 남부지방과 영동지방 등 남해안을 강타한 셀마로 인해 무려 345명이 숨지고 이재민 9만9,516명이 발생했는데요. 태풍 셀마는 하필 밤중에 한반도를 지나갔습니다.
200~300mm나 되는 강수량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해안 만조 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해일이 발생하면서 해안가 지역 피해 규모가 컸어요. 특히 울산 지역에는 대형 송전탑이 무너지는 바람에 울산공단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2002년 루사와 이듬해인 2003년 찾아온 매미는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재산피해도 상당해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됩니다.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전국에 피해를 줬는데요.
2002년 루사로 인해 숨진 이들은 무려 246명, 이재민은 6만6,085명이 발생했고요. 이듬해 매미로 인해서는 131명이 숨지고 6만1,844명의 이재민이 생겼어요. 특히 매미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 중에는 루사로 인한 피해를 미처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태풍 피해를 봤다는 점에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더랬죠.
재산피해를 기준으로 보면 셀마보다 루사나 매미로 인한 재산 피해 규모가 훨씬 큽니다. 셀마로 인해서는 약 3,912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한 반면, 루사로 인한 재산 피해는 약 5조1,479억원, 매미로 인한 재산 피해는 약 4조2,224억원에 이르는데요. 이는 1987년에 비해 2002년, 2003년 피해가 발생할 만한 재산이 부쩍 늘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고 해요.
혹시 지난해 한반도를 지난 제13호 태풍 '링링'을 기억하시나요? 기억 못 하신다면 아마 링링으로 인한 태풍 피해는 비교적 적었기 때문일 겁니다. 링링은 태풍의 규모와 강도, 이동 경로가 루사나 매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이유는 바로 강우량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비보다는 바람이 세게 불었던 탓에 인명피해 및 재산 피해가 적었던 거라고 합니다.
큰 피해 없이 지나가라고 좋은 이름 지어줬는데?
셀마·매미·올가(1999) 등 역대급 피해를 남기고 떠난 태풍들 이름에 숨겨진 뜻이 있다는데요. 바로 "부디 큰 피해 없이 지나가게 해주세요"라는 염원을 담아 당시 여성 이름으로 쓰이던 이름에서 따온 명칭들이라고 해요. 무심하게도 이런 바람과 달리 역대급 센 바람과 비로 아픔만을 남기고 갔지만요.
심지어 셀마는 그 피해가 워낙 심했던 탓에 두번 다시 태풍 이름으로 쓰일 수 없게 됐는데요. 태풍위원회는 앞으로 유사한 태풍 피해가 없도록 셀마라는 이름에 대해 퇴출 결정을 내렸고요. 이 때문에 1992년 태풍 '셀마'는 '테레사'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는 일화가 있어요.
말레이시아에서 만들어 낸 이름 루사도 귀여운 초식 동물 '사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한국인들에겐 역대 최악의 재산 피해를 남긴 태풍일 뿐입니다.
최근 역대급 태풍 중에선 볼라벤도 빼놓을 수 없지요. 볼라벤은 라오스 정부가 내놓은 이름으로 커피 재배지로 유명한 고원 지역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요. 이때문에 볼라벤은 "어쩐지 쓴맛이 강하다", "얼마나 험난한 고원지역이길래"라는 뒷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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