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육성선수거쳐 시즌 홀드왕까지?
팀에서 방출된 뒤 야구공을 손에서 놓을 뻔했던 키움 좌완 불펜 이영준(29)이 긍정의 힘을 바탕으로 키움의 막강 불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일 현재 이영준은 34경기에서 27.2이닝을 소화하며 17홀드(1승 3패ㆍ4.23)를 올리며 이 부문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승계주자 실점율이 ‘0’(11명 승계해 무실점)이다. 지난 9일 LG전에서도 2-1로 앞선 8회 1사 1루 위기에 등판해 0.2이닝을 깔끔히 마무리하며 시즌 17홀드째를 쌓았다.
일각에서는 “요즘 구위로 따지면 마무리 조상우보다 이영준이 더 위력적”이란 말까지 나온다. 이영준은 10일 본보와 전화 통화에서 “(조)상우 구위가 훨씬 좋다. 비교도 되지 않는다. 팬들이 더 잘하라고 격려해 주시는 것”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예전보다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코치진의 분석과 격려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시즌 초반은 좋지 않았다. 올해 첫 등판 KIA전에서 최형우에게 홈런을 맞았고 두 번째 경기에서도 홈런을 허용하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이영준은 “승리조로 7~8회를 꾸준히 맡은 것은 야구 인생에 처음이었다”면서 “시즌 초반 적응도 못했고 그간 생경한 임무에 긴장감도 컸다”고 했다. 한때 평균자책점이 6점 넘게 치솟았지만 ‘지금의 시련이 약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올해만 야구하는 게 아니다. 공부하는 시기로 삼자고 생각했다. 얻어맞을 때마다 더 꼼꼼히 투구 일지를 채웠다”
올해는 특히 의도치 않았던 ‘투구폼 교정’이 있었는데 교정 이후 성적이 귀신같이 좋아졌다. 사연은 이렇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이 5월 초에, 허문회 롯데 감독이 6월 중순에 이영준의 투구 동작에 잇달아 문제를 제기했다. 투구 전 투구판을 밟은 왼쪽 발을 살짝 들었다가 던지는 루틴을 보크라 주장한 것. 당시 심판진은 ‘일관성 있는 투구 동작’으로 보고 보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영준은 “‘앞으로 야구할 날이 더 많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고치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경기 전은 물론 경기 중에도 불펜에서 섀도 피칭을 하며 동작을 가다듬었다”고 했다.
전화위복이었다. 긍정적인 생각에 대한 행운의 결과물이 나왔다. 올 시즌 이영준은 투구동작 수정 이전 18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43(2패 7홀드)에 그쳤지만 이후엔 16경기 1.98(1승 1패ㆍ10홀드)로 승승장구 중이다. 주자 있을 때 피안타율(0.217)이 주자 없을 때(0.300) 보다 더 좋다. 위기에 더 강하다는 뜻이다. 이영준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면서도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집중력이 더 생긴다. 그래서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2014년 KT에 입단(전체 75순위)했지만 1군 경기는 뛰지도 못한 채 방출됐다. 그도 그럴 것이 체격(184㎝)은 좋았지만 직구 평균 구속 130㎞ 중반에 그쳤다. 방출 후 공익근무를 하면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당시 넥센 히어로즈 육성 선수 입단 테스트를 통해 다시 야구공을 잡았지만 재입단 후에도 눈에 띌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2018년 말 윈터리그에서 야구 인생 전환점을 맞았다. 이영준은 “대만 윈터리그에 다녀온 후 한국 2군에서 연습 경기를 하는데 갑자기 직구 최고 구속이 145㎞를 찍었다. 나도 믿기지 않아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서)건창이 형이 추천해 준 트레이닝 센터에서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 효과를 본 것 같다”면서 “방출 후 육성 선수 테스트를 추천해 준 황덕균 선배(당시 넥센 선수), 그리고 (서)건창이 형, 저를 믿고 기용해 주신 전ㆍ현직 감독 및 코치진 등 돌아보면 난 인복이 정말 많은 선수인 것 같다”며 웃었다.
실제로 2019년 잠재력을 끌어올리며 가능성을 보였고 올 시즌엔 ‘7ㆍ8회 순간 삭제’라는 평가를 받으며 리그 최고로 꼽히는 완벽한 키움 불펜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육성 선수 출신으로 ‘시즌 홀드왕’까지 거머쥘 태세다. 이영준은 “10홀드 전까지만 해도 사실 기록엔 큰 관심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홀드왕’ 타이틀을 갖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홀드왕은 ‘욕심’이 아닌 ‘목표’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홀드왕’이란 기록 욕심에 쫓기진 않을 것”이라며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가다 보면 예전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좋은 기록과 상이 따라올 것이라 믿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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