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600㎜ 폭우에 섬진강둑 100m 결국 붕괴
물은 빠졌지만 오폐수ㆍ진흙ㆍ악취만 한가득
“내가 이곳에서 69년을 살았는데, 저 섬진강 둑이 터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해봤어요."
9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에서 30여년째 양계장을 운영 중인 김일만(69)씨는 물에 잠긴 일터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기자에게 “저쪽이 양계장이었다”고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지만, 김씨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양계장 건물은커녕 흙탕물만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김씨가 운영 중인 양계장 7동은 전날 내린 폭우로 모두 침수됐고, 10일 출하 예정이던 닭 13만마리도 모두 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양계장 휩쓸려 닭 13만마리 사라져
김씨가 추산하는 피해금액만 최소 2억원이 넘는다. 김씨는 “면사무소에서 대피하라는 연락을 받고 일단 몸만 빠져나왔다”며 “다리 위에서 점점 물에 잠기는 양계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 억장이 무너졌다”고 탄식했다.
순창군에서 흘러 온 섬진강이 남원 시내에서 뻗어 나온 요천과 만나는 남원시 금지면. 전날 인근 섬진강 제방 100m가 붕괴되면서 전례 없는 수마가 금지면 일대를 할퀴었다. 이 지역에는 5일부터 9일까지 최대 600㎜에 달하는 폭우가 내렸다. 마을 주민들은 제방 붕괴 직전 대피할 수 있었지만, 기어코 제방을 밀고 들어온 물폭탄은 농가와 양계장, 논과 밭 등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모두 휩쓸었다.
다행히 하루 만에 2m 넘게 찼던 물이 9일부터 서서히 빠져나가며 마을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지만, 가축의 배설물과 각종 오폐물들이 뒤섞인 자리엔 지독한 냄새가 가득했다. 가로등은 진흙을 뒤집어 쓴 채 도로에 거꾸러졌고, 철근 구조물 버스정류장도 콘크리트 바닥이 붕괴돼 나뒹굴었다. 주인 잃은 소는 마을 정자에 힘없이 주저 앉았다.
집은 물론이고, 가재도구들도 모두 물에 젖거나 파손돼 못쓰게 됐다. 3주 전 귀석리로 이사왔다는 한 주민은 “세탁기ㆍ냉장고 등을 새로 샀는데 몇번 써보지도 못하고 다 버리게 생겼다”며 한탄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서의열(54) 이장도 “고기, 채소 등 요리 재료 등이 모두 침수됐고, 식탁이며 의자까지 물에 젖지 않은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태풍 온다는데, 또 비 내리면 어쩌나" 한숨
피해 복구는 더뎠다. 감전 우려 탓에 전기가 차단됐고, 상ㆍ하수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물청소는 불가능했다. 면사무소와 소방서에서 집집마다 돌아가며 물을 제공하고 있지만 청소에까지 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자원봉사를 나온 오창숙(56) 남원시여성체육회 회장은 “물도 부족하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라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주민들도 많다. 제방 붕괴 지역으로부터 2㎞ 떨어진 하도리는 지대가 낮아 이날 오후 늦게까지도 마을 안에 2m 이상 물이 가득 차있는 상황이었다. 마을 주민 조동신(36)씨는 "마을에 고인 물 수위가 강보다 더 높은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면 공무원이 빨리 현장으로 와서 물을 빼줘야하는데 그러질 않아 내가 직접 배수문을 열었다"며 답답해했다.
이 곳 주민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 이장은 “내일부터 태풍이 온다고 해서 걱정이 크다”면서 “복구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 더 이상 피해는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난안전대책본부는 태풍 ‘장미’의 영향으로 11일까지 최대 300㎜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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