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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반 여자반인데 왜 동화책 주인공은 남자가 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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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반 여자반인데 왜 동화책 주인공은 남자가 두 배?

입력
2020.08.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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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 중요하지만 아동도서 속 세상 딴판
여성 주인공 적고, 정형화된 직업과 이미지 보여줘
성평등 북큐레이션 등장…창작 아동문학 공모전도

5일 오전 광주 북구운암도서관이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하향으로 재운영해 어린이들이 방역 지침을 지키며 열람실을 이용하고 있다. 광주 북구청 제공.

5일 오전 광주 북구운암도서관이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하향으로 재운영해 어린이들이 방역 지침을 지키며 열람실을 이용하고 있다. 광주 북구청 제공.


직장인 김민지(40)씨는 올 1학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딸아이가 유치원을 가지 못하는 시기, 학습만화를 함께 읽기로 했다. 자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내친김에 공부까지 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자주 책을 읽어주었고 아이도 흥미롭게 지켜봐 뿌듯했지만, 그때마다 김씨 머릿속에는 막 개원한 21대 국회가 그려졌다.

김 씨는 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의원 성비를 따져보면 8대 2쯤 되지 않느냐”면서 “학습만화책 속 남녀 캐릭터가 딱 그런 구성”이라고 말했다. 김씨를 비롯한 부모들이 책을 고를 때 고민하는 분야는 전래동화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은 각종 ‘공주 시리즈’물이다. 약탈혼(붙잡아온 여자를 아내로 삼는 혼인형태)을 미화한 ‘선녀와 나무꾼’, ‘춘향전’으로 대표되는 각종 열녀신화, 전근대적 여성상을 미덕으로 삼는 ‘공주물’들을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읽게 할 것인가를 두고 부모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김씨는 “의도적으로 막진 않되, 인어공주 같은 능동적인 여성상을 더 자주 읽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과 성평등이 국내 출판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아동도서에도 ‘성인지감수성’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영유아기에 접하는 아동도서는 독자의 가치관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페미니즘 유행과 함께 증가한 여성혐오,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성평등 인식을 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제안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어린이상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아동도서 시장에서 여전히 현실의 벽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교과서 속 그림책도 여성은 중성보다 적어

학습만화를 읽으며 가진 김씨의 ‘심증’은 수치로 증명된다. 대구지역 도서관 15곳의 최다 대출 아동도서 100권을 분석한 대구여성가족재단 ‘작은 도서관 사업에 대한 특정성별영향평가’(2018)에 따르면, 등장인물 중 여성은 38.3%에 불과했다. 성별에 따른 직업의 고정관념도 두드러져 분석 대상 도서 46%가 성별에 따라 직업이 달랐다. 여성 직업으로 주부와 교사가 가장 많이 그려졌고, 그 외의 직업으로 사서, 간호사, 미용사, 슈퍼주인, 아나운서 등이 있었다. 남성 직업으로는 의사·연구원·교수 같은 전문직, 대통령· 총리·경찰 등 공권력에 속하는 인물, 오케스트라 지휘자·회장과 같은 리더에 해당하는 인물이 다양하게 그려졌다. 창작 그림책의 47.5%, 전래동화의 40%, 아동도서의 59.1%, 학습만화의 42.9%에서 엄마와 아빠 혹은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것으로 조사됐다.

성 고정관념은 교과서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정주은 성균관대 대학원생·김민정 성균관대 연구원이 발표한 ‘2015 개정 초등교육과정 1, 2학년 국어 교과서 수록 그림책에 나타난 성 역할 분석’(2019)에 따르면 교과서 수록 그림책 속 등장인물 295명 중 남성이 120명(40.7%)으로 가장 많았다. 이보다 충격적인 건 여성(85명·28.8%)이 중성(90명·30.5%)인물보다 더 적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교과서 속 그림책에 등장하는 성인남성의 53.1%는 직업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성인여성 73.3%는 직업이 없거나 알 수 없었다. 논문은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9년 경제활동 참여인구 중 남성이 57%, 여성이 43%다. 이는 현실의 경제활동 참여 인구수의 비율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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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책을 찾자... 북 큐레이션 바람

부모들의 인식 변화와 보수적인 국내 아동출판 현실이 맞물리며 ‘성평등 어린이책 큐레이션’ 서비스가 등장했다. 만 3세부터 7세까지 연령별 아동도서를 추천·배송해주는 서비스 ‘우따따’가 지난해 문을 열었고, 비영리단체 씽투창작소도 지난해부터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나다움 어린이책’을 선정하고 창작공모전도 실시했다.

유지은 우따따 대표는 “성인지 아동도서를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 차리려고 했는데, 막상 찾아보니 적지 않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었다. 책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이런(성평등) 인식이 없는게 문제라는 생각에 북 큐레이션 서비스로 창업 분야를 바꿨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등을 돌며 성평등 아동도서 트렌드를 분석한 유 대표는 △등장인물 설정 및 묘사 △대사 △주인공의 주체성 등을 기준으로 추천 도서를 선정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관련 창작물 출간도 상당히 늘었다”면서도 “다만 성평등 아동도서가 시장에 나와도 반응이 적어 상당수가 단종 되는 게 현실”이라고 아쉬워했다.

씽투창작소는 여성가족부,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지난해 7월 ‘나다움 어린이책’ 134종을 선정해 도서관에 보급한데 이어 9일, 이지유의 ‘나의 과학자들’ 등 2020년 나다움 어린이책 65권을 추가로 발표했다. 출판계, 교육계 등 전문가로 심사위원을 구성, 지난해 5월 이후 출간된 신간을 중심으로 추천받은 624권 중 △자기긍정 △다양성 △공존을 담고 있는 도서를 선정했다. 남윤정 씽투창작소 대표는 “성평등 인식이 청소년물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아동도서에도 그러한가를 말할 때는 조심스럽다. 여전히 학습물, 전집류를 선호하고 있어 빠른 시간에 사회 변화를 담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예민한 촉수를 갖고 (책에 성인지감수성을 담았는지) 검토했을 때 완전하다고 평가한 건 전체의 10%정도”라고 말했다.

10일에는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제1회 나다움어린이책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김다노의 ‘비밀 소원’(사계절) 출판기념회도 연다. 남 대표는 “10년, 20년전과 비교했을 때 (성인지감수성을 담은) 책이 상당수 출간됐지만, 전체 시장에서 보면 갈 길이 멀다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관련 작가와 편집자가 더 많이 배출되길 독려하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심사위원과 작가, ‘나다움 어린이책’을 이용한 교사, 어린이 등 30여 명이 참석한다. 지난해 1회 공모전에 이어 올해는 그림책·장편동화·단편동화 3개 부문으로 나눠 9월 30일까지 작품을 모집한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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