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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화국’ 해체를 기대하며

입력
2020.08.07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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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960년대 초중반 서울시장을 역임한 윤치영이라는 분이 있다. 서울시는 ‘최초의 장기계획인 시정 10개년 계획 수립’을 그의 주요시책으로 꼽았지만, 그다지 일을 열심히 한 분은 아니었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이 서울시 도시계획의 부진함을 묻자 그가 한 답은 이랬다.

“좋은 말씀입니다. 나도 좋은 도시를 만들 줄은 압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아무런 도시계획 사업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이렇게 많은 인구가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멋진 도시계획을 해서 서울시가 정말로 좋은 도시가 되면 더욱더 많은 인구가 서울에 집중될 것입니다.”(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4권 중)

당시 국가 인구는 3,000여만명에 서울 인구는 350만명, 그리고 매년 30만명이 서울로 몰려오고 있었다. 인구집중을 막기 위해 서울을 개발하지 않았다는 게 윤 시장 나름의 확고한 균형발전 철학이었던 것 같다. 실제 국회에선 이런 말도 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전출해올 사람은 도지사의 사전허가를 받고 서울에선 다시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는 법률을 만들어 달라.” 바로 ‘서울 이주 허가제’다. 이쯤 되면 국토균형발전 선구자로 볼만 하다. 너무나 파격적이었는지, 아니면 황당했는지 법 제정은 시도조차 없었다. 위헌(거주ㆍ이전의 자유)이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에 반한다고 결정한 행정수도 이전을 16년만에 여당이 다시 꺼내 들었다. 느닷없이 던진 카드였기에 서울 부동산값 급등에 대한 비난여론을 돌리려는 국면전환용이라는 의심을 샀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 균형발전 정책을 내놓은 사례가 극히 드물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반가웠다. 수도권 과밀화는 ‘파멸적’이기에.

문제는 윤 시장 때와 지금의 서울이 너무도 다르다는 데 있다. 이후 서울은 영동(강남)개발을 시작으로 하루가 다르게 ‘정말로 좋은 도시’로 변했다. 당연히 서울과 그 주변은 지방 인구를 흡입하는 인구블랙홀이 됐다. 교육, 산업, 문화, 중앙정부와 공기업이 집중된 탓이다. 참여정부가 뒤늦게 신행정수도 건설, 기업도시ㆍ혁신도시 조성 등 균형발전 정책을 펼쳤지만, 신행정수도는 헌재에 막혀 좌초됐고 혁신도시는 큰 효과가 없는 미완의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들어선 보수정권 9년은 ‘이 좁은 나라에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눌 의미가 없다’는 논리로 수도권을 전폭 지원했다. 그렇게 서울공화국은 철옹성이 됐다.

이 철옹성은 ‘혁명’적 변화가 없다면 헤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나 답은 누구나 안다. 우선 SKY로 대변되는 교육의 수도권 집중을 해체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청와대, 국회, 공기업이 분산돼도 효과는 제한적이다. 혁신도시가 주말마다 유령도시가 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위 일류라는 대학이 죄다 서울에 있는 한, 매년 상경하는 수만명을 막을 방도는 없다. 어느 공기업을 어느 지방으로 보낼지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선거에 치명적인 지역 홀대 논란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정자립 등 지방정부에 많은 권한도 이양해야 한다. 대기업이 이전하지 않을 수 없는 혜택을 지자체가 직접 안겨줄 수 있는 수준의 권한이어야 한다.

결국 교육과 질 좋은 일자리를 골고루 분산시킬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균형발전의 성공 열쇠다. 그것도 서울을 지금처럼 ‘좋은 도시’로 남겨둔 채 말이다. 서울공화국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비전인 ‘지역이 강한 균형적인 대한민국’으로 만들 혁명적 전환을 기대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정부여당에 묘수는 있는가.



이대혁 정책사회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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