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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를 초토화한 질산의 두 얼굴

입력
2020.08.06 16:00
수정
2020.08.06 18:0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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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언
최낙언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5,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폭발 참사가 일어났다. 항구의 창고에 저장된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폭발한 것이다. 이 질산암모늄은 2013년 9월 러시아 회사 소유 선박이 모잠비크로 실고 가던 중 기계 고장을 일으켜 베이루트 항구에 정박한 것인데, 레바논 당국이 항해를 막아 배를 포기했고, 세관당국은 5차례에 걸쳐 하역하여 12번 창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세관당국도 창고에 두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해외로 수출하든지 화학 회사에 넘기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방치되다가 이번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일으킨 폭발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20%에 해당하는 엄청난 것으로 시민 25만∼30만명이 돌아갈 집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질산암모늄은 농업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비료의 핵심 성분이기도 하다. 모든 생명체는 단백질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식물은 3대 영양소 중에 탄수화물과 지방은 물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데 단백질을 만들려면 추가로 질소가 있어야 한다. 질소는 공기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많지만, 삼중결합(N≡N)으로 너무나 단단하게 결합한 상태라 생명체가 그것을 직접 끊어서 활용할 수 없다. 암모니아(NH3) 같은 형태로 바꾸어야 활용할 수 있다.

질소를 암모니아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질소고정이라 하는데, 아주 특별한 생명체만이 특별한 환경에서 특별한 효소를 이용해 가능하다. 질소고정 효소는 철과 몰리브덴 또는 바나듐을 포함한 복잡한 미네랄 복합체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런 복합체를 만드는 것보다 힘든 것이 산소의 제거이다. 주변에 산소가 있으면 이 미네랄 복합체에 질소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결합하여 원래 목적인 질소고정에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질소고정 세포는 산소가 스며들기 힘든 치밀한 구조를 만들고 레그헤모글로빈과 같은 특별한 분자를 이용해 효소 주변의 산소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더구나 이런 질소고정에는 많은 양의 에너지(ATP)가 필요한데,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산소가 있어야 하고, 산소는 질소의 고정을 방해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런 복잡하고 상반된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힘들기 때문에 질소고정을 할 수 있는 생명체가 그렇게 드문 것이다.

인간이 이런 질소고정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 초, 독일의 화학자 하버와 보슈의 엄청난 노력 덕분이다. 2,500여종의 고체 촉매를 사용해 1만번 이상의 실험을 하여 최적의 촉매를 찾고, 500도의 고온과 200기압을 견디는 특별한 설비를 개발해 1910년 말 암모니아의 생산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 하루에 18㎏에 불과하던 것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매년 1억 2,000만톤을 생산되고,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의 절반 정도가 이렇게 인위적으로 고정한 질소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이번 베이루트에 참사를 일으킨 2,750톤은 전체 생산량의 4만분의 1도 안 되는 양이다.

식물에 절대적인 영양 성분인 질산(NO3)이 폭약의 원료가 될 수 있는 것은 한 개의 질소에 무려 3개의 산소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질소는 전자를 3개를 받으려는 성질이 있어서 수소처럼 전자를 주는 원자 3개와 만나면 매우 안정적인 구조를 형성하는데, 산소처럼 전자를 2개 뺏으려는 원자와 만나면 거꾸로 전자 5개를 빼앗긴 상태가 된다. 결합이 불안정해 식물에게는 이용하기 좋은 형태지만, 충격을 받으면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쉬운 위험한 구조이기도 하다. 연소에는 산소가 필요한데, 질산은 자체에 과량의 산소가 결합되어 있어서, 자체적인 산소 공급이 가능해 순식간에 폭발적인 연쇄반응으로 고체인 상태에서 기체로 변화가 가능하다. 액체가 기체가 되면서 보통 1,000배 이상 부피가 팽창하는데 2,750톤의 암모니아가 순식간에 수천 배의 부피 팽창이 일어났으니 그렇게 가공한 폭발력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질산암모늄과 같은 질소 비료의 유통을 제한하고, 선적하거나 보관할 경우에는 정부의 규제를 받는다. 이처럼 위험성이나 효능은 물질 자체에 있지 않고 사용 방법에 있는 것이다.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ㆍ식품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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