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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도시를 걷자, 혁명과 전복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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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도시를 걷자, 혁명과 전복이 일어났다

입력
2020.08.06 20: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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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을 하고 파리 거리를 걷는 조르주 상드. 폴 가바르니의 석판화. 1840년경. 조르주 상드 기념관

남장을 하고 파리 거리를 걷는 조르주 상드. 폴 가바르니의 석판화. 1840년경. 조르주 상드 기념관


프랑스 유학을 떠난 미국인 학생 로런 엘킨은 독특한 이유로 파리에 매료됐다. 뉴욕과 달리 파리에선 아무 목적 없이 몇 시간씩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어딜 가든 차로 이동하는 미국에선 특별한 목적 없이 도시를 걷는 건 위험하거나 괴상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신나게 파리를 걷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프랑스어로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관찰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는 왜 남성형 명사 ‘플라네르(flaneur)’ 밖에 없을까.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플라네르에 대응하는 여성형 명사 ‘플라네즈’는 존재했지만, '산보하는 여자'가 아니라 '정처없이 막 돌아다니는 여자'란 의미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잘 쓰이지 않았다. 하기야 오랫동안 여자는 보호자 없이 돌아다니지 못하는 존재였으니 그럴 수밖에. 도시를 산보하는 건 남성만의 특권이었다.

저자는 '플라네르'가 아닌 '플라네즈'의 입장에서 도시 걷기를 묘사하기로 했다. 도시가 여성을 배제한 방식, 그 배제 속에서도 여성들이 누린 자유와 기쁨을 찾아냈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걸으며 저자보다 앞서 이 도시를 걸었을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다시 읽는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ㆍ로런 엘킨 지음ㆍ홍한별 옮김ㆍ반비 발행ㆍ464쪽ㆍ1만9,000원

도시를 걷는 여자들ㆍ로런 엘킨 지음ㆍ홍한별 옮김ㆍ반비 발행ㆍ464쪽ㆍ1만9,000원


조르주 상드는 남자 옷을 입고서야 주변 눈치 보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그의 작품 속 여주인공도 남장을 함으로써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성별 간의 불평등을 인지한다. “혼자 런던을 걷는 게 최고의 휴식”이라던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의 길 위에서 글쓰기 재료를 찾았다.

저자는 이 기나긴 여정을 고향인 뉴욕에서 끝내며 “뉴욕을 떠났기 때문에 새롭게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 에세이와 개인적 회고록, 여성 작가들이 남긴 역사를 하나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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