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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가 흐르는 강

입력
2020.08.05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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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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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나리는 빗소리와 게으르게 흐르는 물의 청량함에는 우리를 안정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세계 유수의 명상센터들은 모두 계곡의 여백 속에 오롯이 존재하곤 한다. 소위 말하는 백색 소음이다.

비가 와서 물이 불자, 내가 사는 월정사 앞 오대산 계곡 역시 자못 장쾌한 남성미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세종실록 지리지'에 수록된 한강의 발원지가 숨어 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흔히 한강의 시원하면 태백산 검룡소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검룡소는 일제강점기에 최장거리 개념에 의해서 확립된 곳일 뿐 연원이 오래지 않다.

예전에는 어느 곳이 강의 가장 먼 곳인지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여러 후보지 물을 가져와 어떤 물이 최고의 물인지를 평가해서 발원지를 결정한다.

평가 방법은 그릇에 물을 찰남찰남하게 붓고, 동시에 바늘을 하나씩 찔러 넣는다. 이때 표면장력이 커서 더 늦게 넘치는 물이 최고의 물이 된다.

이런 물은 금속 성분이 많은 물인데, 이 때문에 ‘무거운 물이 좋은 물’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다. 또 이런 무거운 물은 강을 흐르더라도 비중 차이로 인해 다른 물과 섞이지 않으며 중앙으로 흐른다. 이래서 나오는 말이 바로 강심수(江心水)다. 강심수는 조선 시대에는 임금님이 사용하는 전용수였다. 이 강심수의 시원이 바로 오대산에 있는 금강연이다.

'세종실록'은 금강연의 물을 중령천(中?泉)에 비견한다. 중령천은 당나라의 유백추가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으로 평가한 양자강 최고의 물이다. 이런 정도라면, 조선이 공인한 최상의 물이 바로 금강연의 물이라고 하겠다.

조선이 한강의 발원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것이 한양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한양이라는 명칭도 ‘한강의 북쪽에 있는 양택(陽宅)’을 줄인 말이다. 강의 북쪽을 예전에는 양이라 하고 남쪽을 음이라고 했다. 즉 강북은 한양, 강남은 한음인 셈이다.

한음에 산 분으로 유명한 인물이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져 있는 한음 이덕형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덕형이야말로 진정한 강남스타일의 원조라고 하겠다.

지금에야 서울이 커져서 한강이 수도를 관통하는 형국이지만, 과거 한양은 한강의 북쪽에 위치한 사대문 안에 그칠 뿐이다. 이 때문에 명칭부터가 강북인 한양인 것이다.

한강의 ‘한(漢)’하면 장기판이 떠오르곤 하지만, 사실 이 글자는 은하수를 의미한다. 즉 한강이란, 지상을 흐르는 은하수라는 말이다. 넘실대는 낭만 속의 별천지가 현실에 존재하는 곳, 이곳이 바로 한강이다.

한강이 은하수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은 은하수가 남북으로 흐르는 것처럼, 한강 역시 남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게 뭔 소린가 하겠지만, 예전 우리 선조들은 남한강과 북한강 등을 합해 한강이 남북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하늘에는 은하수, 대지에는 한강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홍만종은 그의 '소화시평'에, 이성계의 시로 전해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수록했다. “불현듯 우뚝 솟은 봉우리는 북두에 닿았으니, 한양의 빼어난 지세는 하늘이 낸 것이라네. 산은 평야에서 굽이쳐 삼각산으로 치솟고, 바다는 장강(양자강)을 끌어들이는데 이는 오대산에서 왔다네.”

오대산의 청량한 기운은 오늘도 투명한 강심수를 타고서, 서울에 은하수를 흩뿌리고 있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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