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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국가정보원장은 행정부 내에서 경호를 받는 몇 안 되는 자리 중 하나다. 개인의 신변이 국가 안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같은 장관급 가운데선 이동시 군사경찰이 수행하는 국방부 장관도 있지만 경호 수위는 비교가 안 된다. 국정원장은 일정과 동선 자체가 보안 사항이다. 무장한 국정원 요원이 탄 차량이 앞뒤에서 호위하고, 외부에서 식사나 접견을 할 때에는 요원들이 미리 나가 도청과 테러에 대비한 조치를 한다. 관사도 인적이 드문 국정원 바로 뒤 대모산 숲 속에 있다.
□어느 나라든 정보기관의 활동은 밀행성이 특징이다. 안기부에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의 원훈(院訓)인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아직도 정보맨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2008년 개정),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2016년 개정) 역시 표현은 달라도 맥락은 같다. 일반 직원의 마음가짐이 이럴진대 하물며 정보 수장의 처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2007년 9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탈레반에 납치됐던 한국인 인질 석방 협상을 벌였던 블랙 요원을 대동하고 카메라 앞에 선 이른바 ‘선글라스 맨’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모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휴대폰 번호를 공개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초반 서훈 당시 국정원장이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강남 한식당에서 회동한 사진이 공개돼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당시 한 온라인 매체가 대통령 측근인 양 원장의 동선을 미행하다가 운 좋게 국정원장 회동이 걸려든 경우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얼마 전 SNS에 자신의 개인 일정 일부를 올려 논란이 됐다. 박 원장은 해당 글에서 “아내에게 애들과 가려다 폭우로 연기했다. 교회에 간다”고 썼다. 야당이 “정보 수장 동선을 스스로 노출했다”고 비판하자, 박 원장은 약 2시간 만에 ‘교회에 간다’는 부분을 삭제했다. 박 원장은 정치인 시절 누구보다 SNS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국정원장 하는 데 최대 걸림돌은 'SNS 금단 증세'라는 진단마저 나왔다. 무명에 헌신하는 국정원장은 이제 기대하기 힘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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