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창원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산책하듯 '근대건축물 박물관' 탐방
국내 유일 '軍港탐방길 투어'도 마련
경남 창원시 진해구는 2010년 통합 창원시 출범으로 '진해시'에서 행정구역이 바뀐 도시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군의 모항(母港)이자 국내 최대 벚꽃축제, 군항제가 열리는 '벚꽃 도시' 명성은 그대로다.
'바다를 제압한다'는 진해(鎭海)는 그 이름에서 보듯 일본이 러ㆍ일 전쟁(1904~1905년) 승리 후 한반도를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만든 도시다. '국내 최초의 계획도시' 타이틀을 가졌지만, 그 목적이 '군사 전진기지 구축'에 있었던 만큼 곳곳에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일본은 1910년 4월부터 군항 착공과 함께 '진해 군항 대시가 계획도'를 설계하면서 한국인 마을을 강제 철거했다. 1922년 진해 군항이 완성됐고, 군사 도시로 다시 태어난 진해에는 군 병력을 따라 일본인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시가지가 형성됐다. 당시 진해에 거주한 일본인은 5,600명에 달했다. 진해 사람 10명 중 8명이 일본인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군항 도시, 진해는 북원ㆍ중원ㆍ남원 3개 로터리 주변으로 관공서와 상가 등 건물이 들어섰고 일부는 현재까지 남아 근대문화유산이 됐다. 특히 진해의 중심인 중원 로터리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팔(八)거리다. 일제가 욱일승천기를 표방해 만든 것이다. 지금도 이 일대에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집중돼 '살아 있는 근대건축물 박물관'으로도 손색없을 정도다.
벚꽃의 유명세에 가려 '골목 투어' 정도로 명맥을 이어 오던 진해의 근대문화유산은 2018년 창원에서 개최된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계기로 거듭났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와 해방 이후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 흔적을 스토리텔링으로 묶은 '진해 근대문화역사길'이 조성되면서다.
최초 충무공 동상… '군항제'도 추모제서 시작
군항 도시 진해 구도심을 관통하는 근대문화역사길에서는 반듯하게 정돈된 도로와 그 길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드리 벚꽃나무 가로수길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김명재(73) 진해근대문화역사길투어 해설사는 "가볍게 산책하다 보면 거대한 시대극 세트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고 말했다.
도천동 '해군의 집'에서 출발해 2~3분가량 걸으면 북원로터리 이순신 장군 동상(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호)이 있다. 임진왜란 발발 360주년이던 1952년 4월 13일 세워졌다. 충무공 동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동상이다. 6ㆍ25전쟁 당시 국난 극복을 위해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제작돼 더 의미가 깊다. 매년 봄 열리는 '진해군항제'도 충무공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지내면서 시작된 축제다.
오랜 역사가 묻어나는 충무공 동상 좌우로 충무공의 어록과 시, 5대 충무공 정신, 충무공 3대 해전과 합포ㆍ안골포ㆍ웅포 해전 등 임란 당시 진해의 3대 해전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비록 일본이 만든 근대 군항 도시지만, 그 이전부터 군항 역할을 했던 진해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예술인 사랑방 ‘흑백다방’, 110년 된 군항마을
진해 원도심 심장인 중원 로터리로 발걸음을 옮기면 근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진해에서 ‘흑백다방’ 하면 모두가 안다는 문화공간 ,'흑백'(창원시 근대건조물 제4호)이 가장 먼저 보인다. 흑백이라는 이름처럼 흰색 벽과 검은색 창틀의 대비가 돋보이는 이 목조건물은 1912년 지어졌다. 1960, 70년대 진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이중섭, 장욱진, 유치환, 김춘수, 서정주 등 걸출한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이어지는 군항마을은 100년 전 진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912년 지어진 군항마을 역사관에는 한국 근대사를 대변하는 350여점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반 상점에서 광복 이후 노인정으로 사용되다 2012년 11월 역사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군항마을 주변에는 해군 병사들의 군복에 각종 마크와 이름표를 붙여주는 마크사와 수선집 즐비한 '마크 사거리'가 있다.
상류층 주점 ‘육각집’ㆍ이승만 장제스 들른 ‘원해루’
군항마을에서 다시 중원로터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역사와 맛이 공존하는 건물 두 채가 눈에 띈다. 붉은 지붕의 3층짜리 건물은 뾰족집으로도 불리는 '육각집'이다. 일제강점기 고관대작, 상류층 인사들이 드나든 고급 요정으로 추정된다. 현재 한식당으로 쓰이고 있다.
맞은 편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인 '원해루'가 있다. 일제강점기 사진관 겸 시계점으로 쓰이다 광복 후 중국 음식점으로 개업했다. 6ㆍ25전쟁 당시 유엔군 포로였던 중공군 출신 장철현씨가 인수해 '영해루'로 문을 열었지만 상표 등록을 하지 않아 현재는 ‘원래 우리 가게가 영해루’라는 뜻의 '원해루'라는 상호로 운영 중이다. 1949년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 총통이 아시아ㆍ태평양국 동맹 결성 예비회담을 마치고 식사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백범 김구 친필시비와 즐비한 적산가옥
중원로터리를 지나 남원로터리에 이르면 백범 김구 선생 친필 시비(창원시 근대건조물 제2호)가 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해 해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조국 해방을 기뻐하며 남긴 시를 화강암에 새겨 만들었다. 건립 초기 북원로터리에 있었으나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 철거됐다가 4ㆍ19의거 이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 인근에는 적산가옥(敵産家屋)이 즐비하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고급 주택과 서민 주택이 공존하는 모습은 한 세기 전의 빈부격차를 실감케 한다.
대표적 고급주택은 일제강점기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이 살던 기와집이다. 현재 '선학곰탕'(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193호)이 그 공간을 쓰고 있다. 1912년에 지어졌지만, 여전히 일본 특유의 얇은 부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만큼 옛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서민주택이 모인 '장옥거리'에는 1910~1912년 사이 지어진 2층짜리 일본식 건물 여섯 채가 길게 이어져 있다. 당시 1층은 상가, 2층은 살림집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도장집, 인쇄집, 카페 등 상점이 들어서 있다.
최고(最古) ‘진해우체국’ㆍ원도심 굽어보는 ‘진해탑’
진해에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우체국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있다. 한눈에 봐도 이국적인 외형의 '진해우체국'(국가사적 제291호)은 1912년 러시아풍으로 건축됐는데, 일찍이 진해에 주둔했던 러시아 공관의 영향을 받았다. 애초 지붕에 동으로 된 난간 장식이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재난에 시달린 일본군이 모조리 떼어간 뒤 동판 지붕을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건물 내부의 목조 기둥과 현관 및 천장 장식, 오르내리창 등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2000년까지 우체국 업무를 봤지만, 지금은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 영화 ‘클래식’에서 손예진이 전보를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제황산 정상에서는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한 진해 시가지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일본의 러ㆍ일 전쟁 전승기념탑이 있었으나 헐리고 1967년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진해탑'(창원시 근대건조물 제3호)이 세워졌다. 제황산 꼭대기는 총 365개로 구성된 '1년 계단'으로 올라도 되고, 모노레일을 이용해 편하게 오를 수도 있다.
근대문화역사길 탐방은 해군부대 영내를 둘러보는 '군항탐방길'을 마쳐야 비로소 진해근대화투어가 완성된다. 국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영내 탐방로지만,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폐쇄된 상황이다.
김명재 해설사는 "진해는 박물관, 역사관을 따로 찾지 않고 도심을 걷기만 해도 문화 유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며 "벚꽃 구경을 위해 해마다 봄철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지만, 군항제 시즌이 아니어도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치는 도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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