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넷플릭스가 거침 없는 속도로 국내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 유통업계에 불합리한 형태의 계약 조건 제시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마땅한 규제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최근 국내 영화 배급사인 롯데컬처웍스와의 콘텐츠 유통 협상 과정에서 독점 공급 조건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OTT 업체인 '웨이브' 등의 월정액 서비스에 콘텐츠 공유 금지가 대표적인 요구 사항이다. 웨이브 관계자는 "현재 롯데가 배급하고 있는 영화 '살아있다' 이후 롯데에서 취급하는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넷플릭스의 이런 행보에 대해 국내 콘텐츠 시장 점령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에서 2억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한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 진출 후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워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50억달러(약 18조원)를 투자,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ㆍ유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미스터선샤인' '킹덤' '옥자' 등의 콘텐츠를 흥행시켰다.
여기에 올해 초부터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출이 자제되면서 넷플릭스 가입자 확보는 탄력을 받고 있다. 닐슨코리안클릭이 집계한 넷플릭스의 올해 5월 기준 국내 모바일 응용소프트웨어(앱) 순이용자는 637만명으로, 지난 2월(465만명) 대비 73%나 급증했다. 이는 국내 양대 OTT 서비스인 웨이브(346만명), 티빙(254만명)을 압도하는 규모다. 콘텐츠 제작 업계 내부에서 이미 넷플릭스에 의해 국내 시장은 잠식당했다는 시각이 팽배한 이유다. 강신범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교수는 "국내 투자업계에서는 편당 제작비 한도가 10억원 수준인 반면 넷플릭스가 제작한 미스터선샤인의 경우 편당 17억원에 달했다"며 "양질 콘텐츠를 제작하려는 제작사들이 넷플릭스를 먼저 염두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넷플릭스에 대한 걱정도 크다. 유통까지 집어삼키겠다고 나선 넷플릭스에게 자칫 국내 콘텐츠 생태계 자체가 통째로 넘어갈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국내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콘텐츠를 독점 공급하는 것과 달리 타 업체까지 통제하는 것은 상당히 우려되는 문제"라며 "이는 콘텐츠 동등접근권 및 공정경쟁에 반하는 행태"라고 말했다. 콘텐츠 동등접근권이란 시청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어떤 방송 플랫폼에서든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상파 OTT '푹'과 SK브로드밴드 '옥수수' 합병 과정에서 차별적인 콘텐츠 제공을 금지하는 콘텐츠 동등접근권을 조건으로 허용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넷플릭스에 대한 규제 장치가 미흡하다는 데 있다. OTT는 다양한 공공성 규제를 받는 통신ㆍ방송사와 달리 전기통신사업법상 사전진입 규제가 낮고, 사후규제 중심인 '부가통신사업자'로 규제되고 있다. 아직까지 OTT에 대한 정확한 좌표도 설정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장준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넷플릭스가 OTT 시장에서 자신이 갖는 지위를 이용해서 배타조건부 거래를 해 다른 경쟁사를 부당한 방법으로 거래를 제한했다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판단할 법적 근거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부가통신사업자도 통신사업자가 받는 경쟁상황평가를 받도록 하고 가입자 및 매출 규모 등 회계ㆍ통계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할 방침이다. 하지만 시장 획정 및 실태조사, 사업자별 영향력 분석 등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때까지 플랫폼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현행 방송법 등에서 OTT 사업자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에 관련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독점배급 논란에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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