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포장 시장 점유율 1위 승문수 크린랲 대표
총선 통해 '국민장갑' 별명 얻고 미국 시장 진출 박차
"진정한 친환경화, 정부 정책·소비자 인식 동반돼야"
지난 3월 승문수(38) 크린랲 대표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뤄질 것이라 예상했던 4·15 국회의원 총선거에 방역을 위한 일회용 위생장갑을 납품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2,900만 명 유권자 한 표에 '크린장갑' 두 장. 한국 가정마다 한 개 쯤 있을 법한 생활필수품이 전 세계가 인정한 K방역의 공헌자가 됐다. 38년 역사의 국내 식품포장분야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인 크린랲이었지만, 총선을 통해 '국민 위생장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크린랲 본사에서 만난 승 대표는 "선관위가 가격보다는 품질이 보증된 브랜드를 찾은 것 같다"며 "한 달에 6,000만장 가까운 물량을 댈 수 있는 회사를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라 봤다.
다행히 총선 과정에서 감염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두려움도 있었다. 승 대표는 "혹시라도 코로나19가 확산하면 큰 책임을 져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선 떼돈을 번 줄 알지만 실제 총선에서 거둔 매출액은 5, 6억원 수준"이라면서도 "단 광고에 40억원을 썼던 지난해보다 더 큰 인지도를 쌓은 것 같다"며 웃었다.
또 하나 부담이 됐던 것은 환경 문제다. 선관위가 총선 투표소에 크린랲 비닐장갑을 쓴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환경단체는 '총선 때 쓰는 비닐장갑을 쌓으면 63빌딩 7개 높이'라며 반발했다. 질병관리본부는 "환경오염 우려는 있으나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일회용 비닐장갑을 쓰는 것이 안전하다"는 입장을 냈다.
일회용품 회사를 이끄는 승 대표는 "크린랲에게 환경은 사회적 책임을 너머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주력 상품이 비닐 제품인만큼 연간 25~30억원에 달하는 환경분담금 납부와 동시에 '친환경 크린장갑', '친환경 크린백' 등 환경부에서 친환경 마크를 받은 제품도 개발해왔지만 친환경을 공부할수록 딜레마에 빠졌다.
승 대표는 크린랲 친환경 제품을 들어보이며 "사실 진정한 '친환경' 제품이 아니다"라고 고백했다. 관계 당국은 땅에 묻었을 때 분해되는 성분을 30% 이상 함유했을 때 친환경 마크를 부여하지만, 나머지 70%가 플라스틱 성분이고 결국 미세 플라스틱을 만들기 때문이다.
승 대표는 2년 전 취임 하자마자 자연 유래 소재에서 추출, 미생물에 완전 분해되는 '생분해' 제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 랩은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비닐 장갑과 백은 일부 설비도 갖췄다. 이미 개발된 상품을 상용화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승 대표는 "일반 제품과 비교해 원재료 가격이 최소 3배 이상 비싸다"라며 "기존 제품이 5,000원인데 환경을 생각해 1만원짜리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생활용품 기업의 경우 환경분담금 납부 의무는 있지만, 자동차 업체와 같이 정부가 지원하는 친환경 보조금은 전혀 없다. 친환경 관련 정책과 소비자 인식 수준 향상이 동반돼야 '진정한 친환경화'가 가능하다는 게 승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비닐업계가 친환경 제품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데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에서는 크린랲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시장이 성숙해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면 그때 '진짜' 친환경 제품들을 매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올해 크린랲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사업 다각화와 해외시장 개척을 해나갈 방침이다. 미국 아마존에도 제품을 입점, 7월부터 현지 공략에 본격 나섰다. 승 대표는 "총선 K방역이 호평을 받은 덕분"이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11월 미국 대선도 한 번 노려보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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