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들인 한국형 예보 시스템 적응 단계
"기후변화 속도를 기술진화 속도가 못따라가"
날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장마철이나 혹한ㆍ혹서기 때마다 예보가 번번이 어긋나면서 기상청에 대한 원성이 끊이지 않는다. 수백억 예산을 들여 사양 좋은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갖추고도 왜 적중률이 높지 않냐는 것인데, 기상청은 급격한 기후변화의 영향 등으로 '100% 정확한 예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굵직한 기상 오보 3가지
올해 들어 어긋난 기상청 예보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지난 5월 예보했던 '역대급 폭염'이다. 당시 기상청은 올해 여름철 기온이 평년(23.6도)보다 0.5~1.5도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수인 폭염일수도 20~25일간 이어지며 평년(9.8일)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달 전국 평균기온은 평년 대비 2도 떨어진 22.5도로,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3년 이후로 봐도 45위에 머무를 정도다. 7월 폭염일수와 열대야 일수도 평년 대비 2~3일 적었다.
강수량 예측도 틀렸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예보했다. 그러나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올해 여름 실제 강수량은 전반적으로 평년 대비 많았다. 장마철 기간 중부지방 강수량은 398.6㎜로, 평년(366.4㎜)보다 많았고, 남부지방과 제주도의 경우 각각 529.4㎜, 562.4㎜로 평년(남부 348.5㎜, 제주도 398.6㎜) 대비 약 160~180㎜를 초과했다.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장마가 길어지면서 피해는 커졌다. 이번 장마전선은 우리나라에 상륙하기 전인 지난달 초 중국과 일본에 큰 인명ㆍ재산 피해를 입혔다. 남쪽에서 북상하는 북태평양고기압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건조하고 선선한 기단이 힘의 균형을 이뤄 장마전선이 옴짝달싹 못하고 한 곳에만 비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상청은, 단기적으로 비 구름이 우리나라로 올 때쯤에는 두 기단 간 힘의 균형이 깨져 강한 비가 한 곳에 집중적으로 내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현재 장마전선은 중부지방에 사실상 정체한 채 시간당 80~100㎜의 강하고 많은 비를 집중적으로 쏟아내며 피해를 키우고 있다.
"이상기후로 예측가능성 떨어져"
기상청은 전망이 어긋난 이유의 하나로 '이상기후 현상'을 지목한다. 지구온난화로 기후변화 속도가 빨라졌고, 그로 인해 기상 변동성이 커져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여름 장마철 예보가 어긋난 데에는 예상치 못한 북극 고온현상이 한 몫을 했다. 6월 말 동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저지 고기압(블로킹)으로부터 분리된 고기압이 북극에 정체하면서 고온현상이 나타났고, 여기서 밀려온 찬공기가 우리나라에 머무르다 북상하는 북태평양고기압과 충돌해 폭 좁은 비구름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 비구름대가 가는 곳마다 집중적으로 많은 비가 쏟아지는 이유다. 선선한 날씨도 두 기단의 힘겨루기로 장마전선이 북상하지 못하고 계속 우리나라에 머무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비싼 장비 갖췄는데...
기상청은 지난 4월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을 도입했다. 10년간 1,000억원을 들여 구축한 시스템으로, 앞으로는 우리나라 지형과 기상 특성을 보다 정밀하게 반영해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기존에 쓰던 영국 모델(UM)은 해외 기술이다 보니 우리나라 맞춤형 예보가 쉽지 않았다. 다만 아직은 KIM이 완벽하지 않아 UM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기상청은 이 밖에도 520억원대 슈퍼컴퓨터 5호기, 170억원대 슈퍼컴퓨터 4호기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상청 관계자는 "슈퍼컴퓨터와 새 시스템이 정확한 예측을 위한 도구인 것은 맞다"면서도 "기후변화 속도를 기술개발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100% 정확한 예측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에는 숨겨진 변수가 많고, 현대 과학으로 이를 다 파악할 수 없다"며 "기상청 오보도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변수를 해결하지 못해 발생한다"라고 덧붙였다.
"재난 대비 위해 예보 정확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예측의 한계는 인정하면서도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예보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상황은 앞으로 더 불규칙하게 자주 찾아올 수 있다"며 "기상청의 근본적인 역할은 보다 정확한 예보로 이 같은 재난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 또한 위험기상을 최소 1~2시간 전이나 전날 포착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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