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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일본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를까?”

입력
2020.08.05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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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켜야 하는 ‘혼네’와 들키기 위한 ‘다테마에’


사적인 교류에서 다테마에와 혼네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해법은 불필요한 갈등을 회피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지만, 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도높은 견제가 필요한 시기에는 오히려 부정적 기능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사적인 교류에서 다테마에와 혼네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해법은 불필요한 갈등을 회피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지만, 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강도높은 견제가 필요한 시기에는 오히려 부정적 기능을 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속설의 근거, ‘다테마에’와 ‘혼네’

“일본 사람은 정말로 겉과 속이 다른가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런 질문에는 “글쎄요…” 라는 애매한 답변만 나온다. 십수년 동안 일본에서 사회 생활을 해 오면서 직선적이고 솔직한 ‘돌직구’ 전략이 늘 최선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솔하고 담백한 교제가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닐뿐더러, 일본인 친구에게서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태도를 느낀 적도 없기 때문이다.

삐걱거리는 한일 관계 속에서,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라는 속설이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며 한층 더 회자되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이런 속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라는, 일본 문화 특유의 화법과 태도가 언급되기도 한다. 다테마에란 원래 집의 골격이 되는 기본 요소를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외부에 밝히는 공식적 생각’을 뜻한다. 짝지어서 언급되는 혼네는 ‘진짜 속마음’ 이라는 뜻이다. 이런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인에게는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생각(다테마에)과는 다른, 진짜 속마음(혼네)이 공존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과연 그럴까?

◇우회적, 간접적 화법은 한일 문화의 공통 분모

일본에서는 선물을 상대에게 건넬 때에 “보잘것없는 물건입니다만…” 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습관이 있다. 이런 식의 표현은 군더더기없이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영어 문화권에서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말뜻을 곧이곧대로 이해하자면 보잘것없는 물건을 선물하는 실례를 스스로 인정하는 말인 양 어색하게 들린다. 하지만, 일본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해석이다. 이 관용구는 정말로 보잘것없는 물건을 선물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높이는 겸양의 예의바름을 실천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선물을 줄 때에 “대단한 건 아닙니다만…” 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이 역시 선물이 정말로 대단치 않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정중함을 표현하기 위한 관용구다. 실제로는 이런 관용구가 붙는 선물일수록 정성스레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깍듯이 대해야 하는 상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근저에는 자기 스스로를 추켜올리는 태도가 볼썽사납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존재한다. 이런 정서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에는 자기를 낮추고 겸손을 연출하는 화법과 태도가 공통의 문화적 습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는 상대적이다. 서양인이 자신을 낮추는 화법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태도라고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존댓말과 겸양의 정서를 공유하는 한국인이 일본인의 간접적인 화법이 표리부동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편견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한국도 일본에 못지않게 우회적인 화법을 선호하지 않은가? 한국인 친구의 “조만간 식사 한 번 합시다” 라는 인사치레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 낙담했다는 외국인의 실패담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닌 것이다.

◇들켜야 하는 속마음 ‘혼네’, 속마음을 들키기 위한 ‘다테마에’

그렇다면 다테마에와 혼네는, 일본의 고유 문화인 양 서양인의 눈에 왜곡되어 투영된 아시아 문화의 단면이라고 해야 할까? 꼭 그렇다고 하기 어려운 일본 고유의 맥락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업무를 마친 상사가 직원에게 회식을 제안했다고 하자.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던 직원은 “안타깝지만 업무가 남아 있어서 회식에 갈 수 없습니다” 라고 거절했다. 이 말을 들은 상사가 “그래? 그렇다면 업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라고 대답한다면 아주 큰 ‘삑사리’다. 직원은 업무가 남아 있다는 말(다테마에)로 회식에 갈 마음이 없다는 본인의 의사(혼네)를 에둘러서, 하지만 명확하게 표명했기 때문이다. 그 진의를 눈치채지 못한 상사는 눈치없고 꽉 막힌 인간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혼네는 꽁꽁 숨겨 두어야 하는 속마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들켜야 하는 속마음이다. 달리 말하자면 다테마에는 속마음을 감추는 수단이 아니라, 속마음을 들키기 위한 수단이다. 다테마에로 혼네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다테마에로 혼네를 에둘러 드러낸다는 해석이 더 어울린다. 그런 점에서 다테마에와 혼네의 문화는 속내를 감추기 위한 이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간접적이나마 속내를 드러내는 능동성과 연관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다테마에와 혼네는 집단에서의 조화로움 (일본어로는 ‘和’라고 쓰고 ‘와’로 읽는다)을 미덕으로 삼는 풍조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집단 내의 조화로움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만큼 구성원간의 불협화음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의 의견이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불편한 상황에서 다테마에와 혼네라는 문화적 코드가 동원된다. 다테마에를 내세움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생각(혼네)을 우회적으로 밝힐 수 있고, 덕분에 상대방도 불편하지 않게 거절이나 반대 의사를 받아들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갈등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집단의 조화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문화적 해법이다.

다테마에와 혼네는 본질적으로는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배려하고 미리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어루만지는 사교술이지만,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지 않은 외국인과의 의사 소통에서는 장애물이다. 일본인은 혼네를 알아차려 줄 것을 기대하고 다테마에 발언을 하지만, 혼네를 알아차리지 못한 외국인이 말 그대로 다테마에를 받아들여 오류가 생긴다. 간접적인 화법에 어느 정도 익숙한 한국인도 다테마에와 혼네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말로는 각각 ‘명분’과 ‘속내’ 정도로 번역되지만 문화적으로는 훨씬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뜨뜻미지근한 의사 표명의 관행이 시민 사회에는 걸림돌

일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확산 기세가 심상치 않다. 방역을 강화하기는 커녕 관광 지원에 힘 쏟는 정부에 대한 시민 사회의 여론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런데 이 비판 여론이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한국 사회의 감각에서는 그저 뜨뜻미지근할 뿐이다. 예를 들어 야당은 정부에게 “감염병 시국에 관광 지원 사업을 벌이는 경위를 제대로 설명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하는데, 분명하게 정부의 방침에 반대한다는 뜻인지, 혹은 경위만 제대로 설명하면 찬성이라는 뜻인지 말뜻이 영 알쏭달쏭하다. 이런 요구가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비판적 여론을 드러낸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우회적인 표현 방식 덕분에 정부가 ‘경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둘러대며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다테마에와 혼네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해법은, 사적인 교류에 있어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회피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 뭐니뭐니해도 직장 상사의 회식 요청을 불편하지 않게 거절하는 정도로 잘 활용된다면 원만한 사회 생활을 위한 전술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공적인 의사 표명의 장에 있어서는 오히려 역작용을 부른다. 우회적인 의사 표명이 적절한 강도의 비판과 다양한 의견 수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다테마에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다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외면하게 될 뿐 아니라 권력에게는 비판을 비껴갈 명분을 줄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줄곧 무기력한 일본 시민 사회의 배경에, 갈등과 불협화음이라면 우선 피하고 보는 문화적 관행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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