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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바쳐 신흥무관학교 세운 이석영 선생, ‘8월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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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바쳐 신흥무관학교 세운 이석영 선생, ‘8월의 독립운동가’

입력
2020.07.31 16:3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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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가 재산을 쾌척해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의 주춧돌을 놓은 이석영(1855∼1934)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사진은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연합뉴스

국가보훈처가 재산을 쾌척해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의 주춧돌을 놓은 이석영(1855∼1934)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사진은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연합뉴스


막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주춧돌을 놓은 이석영(1855~1934) 선생이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국가보훈처가 31일 밝혔다.

서울 태생인 이 선생은 1885년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재야에 머물렀다. 이후 1920년 동생인 회영, 시영 등 6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하고 서간도로 망명했다.

선생의 재정 지원으로 1911년 서간도에 인재 양성 및 무장항일 투쟁을 위한 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가 세워졌고 신흥무관학교 전신인 신흥강습소도 설립됐다. 1920년까지 3,500여명의 졸업생이 배출된 신흥강습소는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군의 근간이 됐다.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지만 선생은 노후에 끼니조차 잇기 힘든 극심한 생활고를 겪다 1934년 중국 상하이 빈민가에서 생을 마쳤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보훈처는 “독립운동은 집안의 희생과 몰락을 각오하고 나서야만 했던 가시밭길이었다”며 “그러나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생과 6형제들의 삶과 자취는 독립운동의 정의와 양심이 무엇인가를 역사에 남긴 표상이었다”고 평가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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