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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이 철수할 수 있다

입력
2020.08.02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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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제
조병제전 국립외교원장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배제 못해
전작권 전환 현 정부 임기내 완료해야
미 전략보고서가 동맹 강조한 것 다행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의 모습. 뉴스1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의 모습. 뉴스1



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일고 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말을 꺼냈을 때는 ‘선거철이니까’ 했다. 작년 방위비 협상 때까지도 ‘협상용’으로 봤다. 그런데 볼튼 전 안보보좌관 회고록이나 지난주 주독미군 감축 발표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주한미군 철수 결정이 쉬운 일인 모양이다. 에스퍼 국방장관도 ‘배치 최적화’ 맥락에서 주한미군을 조정할 여지를 남겼다.

지난주에는 미 육군대(AWC) 전략연구소가 인도태평양 지역 육군 배치를 개편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대로 가면 중국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적 우위를 내줄 수 있으니 한반도 전쟁을 가상한 현 육군 배치를 중국 대응 중심으로 바꾸라고 했다. 가볍고 민첩한 편제로 가자는 주장이다.

미군의 한반도 철수는 동아시아의 군사력 균형을 흔들 사건이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서울의 미국과 유럽 상공회의소를 찾았다. 북핵 위기로 외국 투자자들이 철수할 것이라고 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질문의 초점은 ‘북한 핵 어떻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한미동맹에 이상은 없는가’ 였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회고록 '성공과 좌절'에 나오는 대목이다.

일단 주한미군은 쉽게 철수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 5월 백악관 대중국전략보고서가 ‘신냉전’을 선언했으니, 서태평양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간다고 해 보자. 방어가 어려워진 일본은 핵무장으로 갈 것이고, 중국은 동·남중국해에서 행동이 한결 자유로워진다. 미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미국 여론조사 결과도 호의적이지 않다. 의회는 현 수준 유지를 예산에 못박으려 한다. 헤리티지, 평화연구소(USIP) 전문가도 북핵 해결 없는 철수에 반대다.

그러나 중요한 정책이 반드시 합리적 계산으로만 정해지지는 않는다. 미국에는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20년에 지친 염전(厭戰) 분위기가 있다.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오자’는 트럼프의 메시지에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돈 때문에 철수한다’는 논리도 호소력이 커진다.

미국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우리와 사전 협의할 것이다. 카터 행정부 때처럼, 협의 과정에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 감축이 언제든 진지한 주제로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현 정부 임기 내 마무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군은 미군 없는 방어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 우리 안보의 궁극적인 책임을 미군이 맡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를 명분으로 ‘비용+50%’ 청구서를 내밀어도 반박할 명분이 궁색하다. 전작권 전환은 더 미룰 수 없다. 한미연합훈련으로 준비 상황을 검증한다니, 훈련은 차질없이 실시해야 한다. 남북대화를 위한 훈련조정 이야기도 있다는데,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 전에 핵문제가 해결되면 좋지만, 그게 아니면 북한 핵에 대응할 수 있는 한국의 역량 확보 방안이 나와야 한다.

미국이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도 생각해 두자. 가공할 군사기술 발달을 감안하면, 미국의 방위공약이 약해지지 않는 범위에서 여러 형태의 협력을 생각할 수 있다. 일부 감축, 순환 배치, 합동훈련, 정치 동맹 등 다양한 조합도 가능하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은 이번을 넘기더라도 또다시 제기될 것이다. 그때마다 ‘안된다’고 막아서기만 해서는 정책도 대책도 아니다. 그래서는 험한 21세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미국의 5월 전략보고서와 지난주 육군 보고서가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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