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의 탄생(8.17)
문명사적 근대가 기적(汽笛)과 함께 시작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철도의 속도와 편의는 시간-공간을 압축하면서 중세가 경험치 못한 사유의 동시성, 새로운 문화를 가능케 했다. 역사(驛舍)를 중심으로 세상이, 열차 시간표를 따라 삶이 재편됐다. 무엇보다 열차는 시각적 충격이었다. '열차= 근대'는 직관의 산물이기도 했다.
'멋진 신세계'(1932)에서 기술문명의 디스토피아를 염려한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는 '열차'를 '기계'로 치환했다. 산업혁명으로 인력, 축력, 풍력의 자연력에서 해방된 기계가 근대 문명을 열었다는 거였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그는 포드의 컨베이어시스템으로 24시간 가동되는 군수공장에서, 기계 부품같은 노동자의 삶에서 디스토피아를 예감했다. 그 디스토피아의 혈관을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에세이 선집 'The Olive Tree'에 수록한 1937년 글 'Time and the Machine'에서 그는 '최근까지 시간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State of mind)'이었지만, '이제 세계(인간)가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고, 시간이 세계를 통제하게 됐다'고 썼다. 해와 달이 아닌 인공의 시간(artificial time)과 함께 근대가 깨어났다. 즉 세계를 장악한 시간이 열차와 시간표를 만든 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보기에 인간은 그리 믿음직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만든(만들게 한) 게 자명종이었다. 자명종은 파라오의 채찍인 셈인데, 다른 점은 고대의 노예들이 한사코 채찍을 피하려던 것과 달리 시간의 지배에 길든 인간은 스스로 성능 좋은 자명종을 사서 머리맡에 둔다는 사실이다. 기적으로 열린 근대는 자명종으로 완성을 알렸다.
미국 발명가 레비 허친스(Levi Hutchins,1761.8.17~ 1855.6.13)가 1787년 인류 최초의 기계식 자명종을 발명했고, 지금은 그 기능을 물려받은 휴대폰이 24시간 인간과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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