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피해 방주짓던 일꾼들에게 귀한 와인을 대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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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피해 방주짓던 일꾼들에게 귀한 와인을 대접하다

입력
2020.08.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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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와 함무라비 법전 속 와인 이야기

편집자주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길가메시 서시시가 기록된 점토판. 쐐기문자로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에 와인이란 단어가 16차례 나온다. 대영박물관 소장. 위키미디어 제공


기록을 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문자이다. 문자는 대략 5000년 전부터 기록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 이전에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거나, 바위 표면이나 동굴 벽에 그림으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나, 역사학자들이 보통 문자 기록을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하는 것도 문자 기록의 중요성 때문이다.

역사시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이 열었다. 메소포타미아는 ‘강과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두 강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말한다. 지금의 이라크 지역으로 현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섬’이라는 뜻의 ‘자지라’라 부른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후대에 셈족이 수메르인이라 칭했는데, 이들이 기원전 3500년 무렵 인류 최초의 도시를 건설하고 문자를 발명했다.

수메르인은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설형문자)를 기원전 3000년 무렵에 발명했다. 이들은 문자를 점토판에 기록해 남겼는데, 처음에는 주로 신전에 바치는 공물이나 물물교환한 물건의 양이나 수를 점토판문서에 기록했다. 그러다 점차 문명이 발전하면서 법률 등 국가 문서나 서사시 같은 문학 작품, 의학, 수학, 천문학까지 점토판에 담았다.

필자가 점토판문서를 언급한 까닭은 와인과 관련한 최초의 기록을 수메르인이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남겼기 때문이다. 본업이 출판이라 그런지 문자와 관련한 이야기가 필자에게는 무척 재미있게 다가온다. 게다가 와인까지 얽힌 이야기이니 말해 무엇 하랴.

아무튼, 수메르인들은 깨끗한 진흙을 평평한 판 모양으로 편 뒤, 점토판이 마르기 전에 갈대를 갈아 뾰족하게 만든 도구로 쐐기 모양의 글자를 눌러 쓰거나 새겼다. 그런 다음 점토판을 햇볕에 말리고 중요한 문서는 가마에 구워 보관했다. 이미 흙으로 토기를 만들 줄 알았으니 점토판 만드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테다. 이들은 나중에 석판이나 금속판, 바위, 상아, 밀랍 등에도 문자를 새겼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길가메시 부조. 위키미디어 제공.


수메르인이 남긴 유명한 점토판문서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 작품이 있다. 바로 ‘길가메시 서사시’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남부에는 인류 최초의 도시 우루크가 건설되었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800년 무렵 우루크를 다스리던 왕이다. 이젠 전설이 된 그의 이야기는 영웅담으로 오랜 세월 구전되었다. 그러다 기원전 1900년 무렵 쐐기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을 기원전 14세기에 이르러 바빌로니아의 사제이자 시인이었던 신-레케-우닌니가 이곳저곳에 떠돌던 구전 자료를 편집해 점토판문서 12개에 기록해 남겼다. 이 점토판문서는 기원전 7세기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인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인 아슈르바니팔이 수도 니네베에 건설한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이를 19세기 들어 영국인 조지 스미스가 해독해 발표하여 길가메시 이야기가 우리에게까지 알려졌다.

길가메시 서사시 영어본에 바로 와인이라는 단어가 16차례 나온다.

길가메시는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이다. 영웅에서 폭군으로 돌변해 모든 여성의 초야권을 빼앗아 백성을 괴롭히던 길가메시에게 신들은 그의 적수로 야생 인간 ‘엔키두’를 보냈지만, 둘은 힘을 겨루다 친해져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러다 신들의 노여움으로 친구 엔키두가 죽자 삶의 허망함을 느낀 길가메시는 죽음을 이겨낼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각지를 떠돌던 중 죽음의 바다 앞에서 포도로 와인을 빚고 있던 시두리라는 여인을 만난다. 바로 여기에 ‘와인’이 등장한다.

“바닷가에는 포도로 술을 만드는 시두리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신이 준 황금 술통을 안고 앉아 있었다.”

와인을 만들고 있던 시두리가 일러준 방법으로 길가메시는 불멸의 삶을 살고 있는 우트나피시팀이라는 인간을 만난다. 우트나피시팀은 길가메시에게 자신이 어떻게 영생을 얻었는지 알려준다. 이 대목에서는 ‘성경’에서와 유사한 대홍수 이야기도 나온다.

인간에게 화가 난 신들이 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없애버리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물의 신인 엔키와 함께 살던 에아가 우트나피시팀에게 그 계획을 일러주었다. 우트나피시팀은 서둘러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방주를 만드는 일꾼들에게 아낌없이 풍족히 먹이면서 일을 시켰다.

“나는 일꾼들을 위해 매일 소를 잡고 양을 잡았다. 목수들에게는 실컷 마실 수 있도록 독주, 붉은 술과 기름, 흰 술을 내주었다.”

결국 우트나피시팀은 대홍수에서 살아남았다. 한편 인간을 멸종시킨 것을 후회한 신들이 그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선물로 주었다. 길가메시는 그에게서 영생의 비법과 늙지 않는 신비의 불로초를 얻는 방법을 전수받지만, 안타깝게도 영생도 영원한 젊음도 얻지는 못한다.

영어본을 살펴보니 여기에 등장하는 붉은 술은 Red wine, 흰 술은 White wine, 독주는 Raw wine(거친 술 또는 막술이라 번역하면 적당할 듯)이라 적혀 있다.


기원전 26~25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원통 인장에 새겨진 부조. 큰 통에 든 술을 대롱으로 마시는 장면의 술은 맥주이고, 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으로 마시는 장면의 술은 와인으로 추정한다. 대영박물관 소장. 위키미디어 제공


‘길가메시 서사시’는 당시 메소포타미아에 와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정작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와인을 생산하지 못했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마신 와인은 북쪽의 아르메니아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따라 들여온 것들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알려진 바대로 곡물 농사는 잘되었지만, 기후와 토양 조건이 포도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대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풍족한 농산물로 맥주를 만들어 일상 음료로 마셨다. 그들에게 와인은 돈을 많이 들여 먼 곳에서 수입해야 하는 값비싼 술일 뿐이었다. 와인은 종교 의식에 쓰이거나 특권층인 왕이나 귀족만 마실 수 있었다. 기원전 26~25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원통 인장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이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큰 통에 든 술을 대롱으로 마시는 장면의 술은 맥주이고, 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으로 마시는 장면의 술은 와인으로 추정한다.

우트나피시팀은 그 정도로 귀한 와인을 일꾼들에게 대접한 것이다. 와인이 제아무리 비싸다한들 목숨보다 귀할까. 살려면 얼른 방주를 만들어야 하니 까짓 와인이 대수는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이 와인을 수입해서 마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오래된 점토판문서가 있다. 기원전 2300년경의 것으로 와인에 관한 문자 기록으로는 지금까지 발견된 유물 가운데 최초이다. 이 기록은 수메르의 도시인 라가시의 왕이 남긴 것이다.

“나, 라가시의 왕 우르카기나는 산간 지역에서 커다란 단지에 담아 내게 보내는 포도주를 전부 받기 위해 저장고를 건설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산간 지역은 당시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가 활발했던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산간 지역에서 온 술이라 하여, 와인을 “산간 지방의 맥주”라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와인을 수입해 마시고자 한 특권층이 있었기에 와인 무역은 수익성이 매우 높았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에서 와인을 가득 싣고 강을 따라 내려온 배는 바빌론에서 거래가 끝나면 싼값에 처분하거나 폐기했다 한다. 그래서 와인값에는 뱃값까지 포함되었다 하는데, 그 가격이 얼마나 비쌀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함무라비법전이 새겨진 비석. 280여 개의 법조문 중 108조~111조까지가 술(와인,맥주)에 관한 상거래조항이다. 루브르박물관 소장. 위키미디어 제공


쐐기문자로 전해지는 유물 가운데 와인을 언급한 또 다른 기록도 있다.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즉 피해자가 당한 손해를 가해자도 같은 정도로 당하게 한다는 보복의 원칙인 ‘탈리오의 원칙’으로 유명한 ‘함무라비법전’이다. 기원전 1800년경 바빌로니아의 왕인 함무라비(기원전 1792~1750 재위)가 제정한 법을 현무암 돌기둥에 아카드어 쐐기문자로 새긴 것이 함무라비법전이다. 108조에서 111조까지의 조문이 술에 대한 상거래 조항이다. 여기서 술은 맥주와 와인을 모두 일컫는 것으로 해석된다.

“108조 술집 여주인이 술값으로 곡물을 받지 않았거나, 지나친 정도로 은을 요구하였거나, 술의 되를 곡물의 되보다 작게 하였으면, 그녀를 물속에 던져 넣는다.

109조 불량배들이 술집에서 모의를 하여도 여주인이 그들을 잡아서 궁전에 데려가게 하지 않았으면, 그 여주인을 죽인다.

110조 만약 여사제가 술집을 열거나, 술집에서 술을 마신 경우 그녀를 화형에 처한다.

111조 만약 술집 여주인이 60카의 맥주를 제공한 경우, 그녀는 50카의 곡식을 수확 시 그 대금으로 받을 수 있다.”

법조문을 보면, 눈에는 눈이라더니 술집 ‘여주인’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량배들을 여주인이 어떻게 잡아서 데려가라는 건지, 그냥 죽으라는 말 아닌가. 술을 엄청 많이 먹인 다음, 다들 곯아떨어지길 기다려야 할까. 아무튼 함무라비께서 문자로 기록한 법전을 남긴 덕에 와인을 포함한 술에 대한 기록은 물론, 당시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다.


함무라비법전이 새겨진 비석. 280여 개의 법조문 중 108조~111조까지가 술(와인,맥주)에 관한 상거래조항이다. 루브르박물관 소장. 위키미디어 제공


이 글을 쓰는 동안 계속 든 생각이 있다. 만약 인간이 문자를 발명해 기록하지 않았다면 역사 자료를 참조한 이 글을 쓰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와인에 관련한 역사 자료를 탐독하다 보니 와인 생각이 간절하다. 함무라비법전 196조에 따르면 눈에는 눈이니까, 그래! 까짓것 와인에는 와인이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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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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