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두를 칼이 없다'는 변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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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두를 칼이 없다'는 변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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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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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 식당에서 열린 20∼30대 여성들과의 '성 평등 조직문화 논의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가 28일부터 이틀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한 서울시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점검은 서울시가 성희롱ㆍ성폭력 방지 조치와 관련 예방 교육 등을 제대로 시행했는지 여부, 그리고 시의 성희롱 예방지침 및 매뉴얼은 문제가 없었는지를 살펴보는 게 전부였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약 20일 만에 이뤄진 뒷북 점검임에도, 내용을 보자니 김이 빠진다. 박 전 시장 스스로 강화했던 서울시의 성폭력 예방 매뉴얼을 뒤늦게 살펴본들 사건의 본질에 얼마나 다가설 수 있을지 의문만 남겼다.

여가부는 알맹이 없는 서울시 점검에 대해 이번에도 "조사권과 시정명령권이 없는 입장에서 한계가 있다"는 답만 되풀이 한다. 사건자체를 직접 조사하거나 징계할 권한이 없어 서울시에 대한 점검이 겉핥기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여가부의 별 볼일 없는 현장 조사는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후 여가부가 시행한 충남도청 특별점검도 사실상 직장 내 성폭력 실태와 사건 처리 절차 점검에 그쳤었다. 물론 안 전 지사에 대한 조사는 전혀 없었다.

“휘두를 칼이 없다.” 박 전 시장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여가부가 방패 삼아 내놓는 이 말은 성평등 주무부처의 온당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했을 때 공공기관 성폭력 방지책을 내놓으라는 국회의 요구가 있었지만 여가부는 지금까지 입을 닫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모친상 조문으로 2차 가해 논란이 일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침묵했다. 제대로 된 조사를 위해 매번 권한을 달라는 여가부는 이에 앞서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한 여성정책 전문가는 "여가부가 권한 강화를 요구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대한 핑계를 축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여가부는 '조사 권한이 없다'고 먼저 말하기 전에 잇따라 발생하는 지자체장의 성비위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큰 틀에서 짚어 나가겠다고 나서야 했다. 그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은 피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연대 메시지와 권력형 성폭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 표명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성평등 주무부처 여가부에 국민이 바라는 최소한의 행동이 아니었을까.


[기자사진] 박소영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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