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말도 그러하다. 누군가가 “여기 자리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응당 빈자리를 묻는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지만 자리란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도 의미하므로 반대의 상황을 묻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말이 적지 않다. 설사약이란 말은 설사를 멎게 하는 약도, 나게 하는 약도 된다. 이런 말로 질문을 받으면, ‘예, 아니요’ 중에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한편, 비슷한 말로 보이지만 어감이 달라 뒤섞을 수 없는 말들이 있다. 고마운 일에는 ‘덕분에’라 하지만, 바라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할 때는 ‘탓에’라고 한다. 요행을 바랄 때는 ‘행여나’라 하면서도, 끝내 오지 않을 그를 기다릴 때는 ‘혹시나’로 말한다. 앞으로 생길 일을 표현할 때도 문제가 될 상황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아니라 ‘우려’라고 한다. 어떤 분야에서 앞서 가는 ‘선구자’는 일을 꾀한 바로 그 ‘장본인’과 구분하여 말해야 한다. ‘휘영청 밝다’라 하면 달빛을 말한다. ‘휘영청’이 밝은 상태를 이를지라도 이 말이 해와 어울릴 수는 없다. 어쩌면 말이란 흡사하게 닮았을지라도 헷갈려서는 안 되는 쌍둥이와 같은 것이다. 비슷한말로 보여도 어감에 무감각하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말도 착시를 일으킨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차가운 음료를 내려놓으면서 “식기 전에 드세요”라 할 수는 없다. 닭장에는 닭이 살고 토끼장에는 토끼가 산다고 하여, 모기장에는 모기가 사는가? 말이란 여러 얼굴로 사람의 생각을 간섭하지만, 농담과 진담을 구별해 말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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