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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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문제로 온 나라가 뜨겁다. 최근 몇 년 사이 20평형 아파트 값이 수억 원 올랐단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사야 한다며 젊은 세대들도 ‘내 집 마련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정권의 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올 지경이다. 지난 7월 10일 다주택자들에 대한 세금 강화 처방이 먼저 나왔고, 주택공급 방안들도 곧 발표될 것 같다. 집값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집값은 증후와 같다. 사람 몸의 체온이 올라 열이 나는 이유가 있듯 집값을 오르게 하는 원인이 있기에 집값이 오른다. 집값을 잡겠다며 ‘대증요법’으로 풀 게 아니다. 근본원인을 밝혀내고 국토정책, 도시정책, 주택정책 같은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가장 먼저 바로잡고 실행해야 할 게 ‘국토정책’이다.
①국토정책- 균형과 분권을 최우선으로, 사람과 권한을 지방으로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은 수도권 과밀이다. 극심한 편중과 불균형 때문이다. 1975년 당시 수도권에는 전체 인구의 약 31.5%가 살았고, 비수도권 기초지방자치단체 인구는 대부분 5만 명 이상이었다. 2019년 말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과반을 넘겼고, 인구 5만 명도 안 되는 기초지자체 수도 크게 늘었다. 특별시와 광역시의 자치구를 뺀 전국 기초지자체 152곳 가운데 51곳(33.5%)이 인구 5만 명 미만이고 그나마 인구가 점점 더 줄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얘기다. 수도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주택문제 등 도시문제가 가중되고, 지방은 사람이 너무 없어 소멸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국토를 사람 몸에 비유한다면 머리는 너무 커져 터지기 직전인데 반해, 손끝 발끝에는 피가 돌지 않아 괴사 직전인 셈이다. 어떡해야 할까? 손발 다 잘라내고 머리만 키워 건강히 오래오래 살 수 있을까?
국토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지금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국토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집값을 잡겠다며 수도권에 신도시를 계속 짓고 철도를 연결하고 온갖 기반시설들을 계속 공급해야 하겠는가? 새로 짓는 신도시와 더욱 편리해진 생활여건이 지방 인구를 빨아들여 지방소멸을 가속화할 게 뻔한 데도 수도권에 재정투자를 계속해야 하겠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엄중한 과제는 지방소멸을 막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단단히 다지는 일이다. '될 놈만 키운다'는 식의 개발시대 성장거점론을 폐기하고 '국토를 고루 키우고 살린다'는 균형발전 철학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우뚝 세워야 한다. 국가가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줄을 세우는 중앙집권시대를 끝내고 진정한 자치와 분권시대를 열어야 한다. 수도권으로만 몰려오는 물길을 돌려 국토 구석구석까지 피가 돌고 활력이 스며들게 해야 한다. 사람과 권한을 지방에 되돌려주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람 몸도 국토도 다르지 않다. 고도비만과 영양실조의 양극단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공멸뿐이다.
②도시정책- 집값 잡으려 기존 정책 뒤엎기 안된다
다음으로 다잡아야 할 게 '도시정책'이다. 집값이 뛰는 게 공급 부족 때문이라며 온갖 공급론들이 난무한다. 다행히 논란이 되었던 그린벨트 해제는 접었지만 역세권 초고밀 개발, 재개발ㆍ재건축 규제완화, 국공유지 고밀개발 등이 논의 중인 것 같다. 문제는 집값을 잡겠다며 도시정책들을 뒤엎는 일이다. 용적률과 높이규제와 용도규제를 풀어서라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증세를 잡으려다 더 큰 다른 병을 키우는 어리석음이다. 도시정책과 도시계획은 우리 도시의 현재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어장치다. 다 풀어 엉망으로 만들 셈인가? 개발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 도시들은 본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적 건강성을 크게 잃어 상처투성이다. 더는 망가트리지 말고 되살려야 한다. 뉴딜이 무엇인가? 근본적인 대전환 아닌가? 개발시대 관성에서 벗어나 '친환경ㆍ저탄소ㆍ생태중심'의 재생시대로 전환해야 할 이 시점에 집값을 핑계로 다시 개발시대로 토건국가로 돌아가려는가?
③주택정책- 중과세와 공공주택 확대가 핵심
'주택정책'도 중요하다. '집값대책'이 아닌 '주택정책'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불로소득을 보장해주는 느슨한 부동산 세제와 공공주택의 부족이다. 다주택자들이 벌어드린 소득만큼 꼬박꼬박 중과세 하고 거둬들인 세금은 공공주택 비율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나 다르지 않다. 모든 국민이 다 자기 집을 보유하지는 않는다. 국민 가운데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자가보유율’은 평균 60~70% 정도이고 우리도 이미 61%를 넘겼다. 청년과 신혼부부와 서민들에게는 평생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충분히 주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문제다. 선진국들의 공공주택 비율이 20-30%이고, 싱가포르는 80%에 이른데 반해 대한민국은 8%에 불과하다. 지금 주택정책의 핵심과제는 공공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일이다.
다주택자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신혼부부들에게 '다신공(다자녀 연계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자. 모든 신혼부부들이 다신공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되, 자녀수에 비례해 임대기간을 늘려주고 주택규모를 키워준다면 집 걱정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과 집 없는 서민들에게도 평생 살 수 있는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한다면 집값전쟁에 굳이 뛰어들지 않는 사람들이 늘 것이고 과열경쟁도 가라앉을 것이다.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재생방식으로 전환을
문제는 공공임대주택의 공급방식이다. 신개발, 재개발, 재건축처럼 단위를 키워 새로 짓는 '개발방식' 대신에 빈 곳을 채우고 있는 것들을 고쳐 지혜롭게 되살리는 '재생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민간 소유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을 국가나 지자체가 사들여 요즘 취향에 맞는 '공동체주택' 방식으로 리모델링해서 제공한다면 젊은 부부들이 함께 아이들 키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서울과 여러 도시들에 이런 사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더욱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오래된 아파트도 건물과 나무들과 동식물 서식처까지 다 없애고 새로 짓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방식으로 재생하고, 중대형 아파트는 땅콩처럼 둘로 나눠 일부를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면 집주인에게도 좋고 집을 얻는 이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신개발이나 재개발이 아닌 방식으로도 공공주택을 공급할 수 있으니 정부나 지자체에게도 역시 좋은 상생의 해법이 될 것이다. 텅텅 비어있는 원도심의 빈집과 가게와 사무실들도 쾌적하게 리모델링해서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면 주택공급과 원도심 재생을 함께 이루는 일거양득 전략이 될 것이다.
2018년 기준 주택보급률 104.2%가 말해주듯 대한민국의 주택은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편중이다. 어디는 모자라고 어디는 남는 '결핍'과 '잉여'가 엇갈려 공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꾸 새로 지을 게 아니라 빈 곳을 고치고 채울 때다. '크게크게 신개발 재개발하는(크신재)' 대신 '작게작게 고치고 채워야 한다(작고채)'. 하나하나 규모는 작아도 그 수를 늘린다면 경제생태계의 밑바탕을 튼튼하게 키우는 말 그대로의 '뉴딜'이 될 것이다. 신도시, 재개발ㆍ재건축, 뉴타운 같은 대단위 개발 프로젝트에는 참여할 엄두도 못 내던 작은 설계사무소, 작은 건설회사, 동네 자영업자 같은 경제적 약자들도 작게작게 고치고 채우는 수많은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혜택을 함께 누릴 것이다. 지금은 재생시대다. 개발시대의 관행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해법을 찾을 때다. 어렵지 않다. 상식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필요한 게 또 있다. 다수 국민들의 지지와 적극적인 응원이다. 지방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그 희망이 현실이 된다는 믿음을 키우자. 베이비부머들이 수도권과 대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중소도시로 농산어촌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초대하고, 떠나오길 잘했다며 무릎을 칠만큼 세심하고 화끈하게 지원하자. 국가 재정투자의 방향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돌리고, 개발투자에서 국민의 행복을 삶을 보살피는 생활투자로 전환하자. 그럼 끝낼 수 있다. 이 미친 집값 소동을.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서울대에서 도시설계(박사)를 전공하고 서울연구원에서 북촌, 인사동, 걷고 싶은 도시, 마을재생, 북한도시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 <도시의 발견> <천천히 재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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