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트라우마' 호소에도, 매뉴얼 타령만 한 서울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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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추행 피해 '트라우마' 호소에도, 매뉴얼 타령만 한 서울여성영화제

입력
2020.07.28 01:00
수정
2020.07.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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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화제 현장서 성추행 피해... 가해자 못 찾아
"매뉴얼 없다" 영화제 측 "제작 참여해달라" 황당 요구

영화제 레드카펫. 게티이미지뱅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측이 영화제 현장에서 성추행을 당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세워달라고 호소한 피해자에게, 오히려 성범죄 방지 매뉴얼 제작에 참여해 달라는 황당한 요청을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제 측은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성범죄 피해자가 겪을 수 있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국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2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8월말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영화제 이벤트 현장에 자원봉사를 나섰다가 한 여성 관객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 이 여성 관객은 영화제에 소개된 한 성인 영화의 장면을 따라하겠다며 A씨의 손을 잡아 특정 신체 부위에 밀착하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당시 A씨는 피해 직후 곧바로 상영관을 나와 경찰에 신고하고 영화제 측에도 피해 사실을 알렸다.

피해 신고가 신속히 이뤄졌지만 경찰은 가해자를 찾지 못했다. 경찰이 상영관 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입수해 분석했지만, 상영관 내부가 워낙 어두워 영상 속 화면만 보고 가해자를 지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제 측도 홈페이지에 목격자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경찰이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한 탓에 해당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계자가 A씨에게 성범죄 대처 매뉴얼 제작 과정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는 메신저 내용. A씨 제공

가해자를 찾지 못해 범죄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되자 A씨는 "사건을 덮을 게 아니라 사후에라도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고, 영화제 측은 "매뉴얼이 없어 곤란하다"는 식으로 회피성 대응을 했다. 이후 A씨는 영화제 측에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 해 줄 것을 요청하며 유사 범죄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영화제 측은 뒤늦게 A씨에게 매뉴얼을 마련하겠다는 답을 줬지만 일처리는 더디기만 했다. 이후 영화제 측의 대응도 A씨로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제 측이 피해자인 A씨에게 재발 방지 매뉴얼 제작에 참여해 달라는 요구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영화제 측의 매뉴얼 참여 요구에 A씨는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트라우마가 심각한 상태라 거절했는데도, 계속 참여를 요구하는 영화제 측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측이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린 사건 관련 입장문 일부. 트위터 캡처

영화제 측은 A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그런 요구(매뉴얼 제작 참여)를 한 적이 없고 피해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반박했다. 다만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 매뉴얼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1차 매뉴얼을 마련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발표 시기가 미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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