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7나노 CPU칩 출시 연기… 위탁 가능성도 열어
ARM은 모회사 소프트뱅크 경영난에 매각 기로에
세계 반도체 맹주들이 잇따라 동요하면서 시장 판도가 격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컴퓨터 및 서버 중앙기억장치(CPU)의 최강자 인텔은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좌초할 위기에 처했고, 스마트폰 두뇌 격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시장을 장악한 ARM은 소유주인 일본 소프트뱅크의 경영난에 매물로 나왔다. 인텔이 차기 제품 개발 난관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ARM 매각이 현실화된다면 누구 품에 돌아갈지에 따라 삼성전자를 포함한 주요 기업의 입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자존심 구긴 인텔, 매각설 휩싸인 ARM
27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 23일 실적 발표에서 7나노미터(㎚, 1억분의 1m) 공정 기반의 차기 CPU(제품명 '미티어 레이크') 출시를 예정보다 6개월 늦춰 2022년 말이나 2023년 초 내놓겠다고 밝혔다. 당초 인텔은 경쟁사 AMD의 7나노급 CPU를 겨냥해 내년 말까지 새 제품 개발을 마치고 내후년 출시할 계획이었다. 특히 인텔은 제품 준비 과정에서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반도체 기판에 보다 가늘게 회로를 새겨넣는 초미세공정은 같은 면적 대비 성능 및 전력효율을 향상할 수 있어 제품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기술로 꼽힌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1위인 TSMC와 손잡고 지난해 7나노 출시에 이어 5나노 칩을 개발 중인 AMD는 이로써 인텔과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게 됐다.
ARM은 매각설에 휩싸였다.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영 악화를 타개하려 ARM 지분을 팔거나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의 75%는 본사, 25%는 자회사 비전펀드를 통해 보유하고 있다. 블룸버그 등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주력으로 하는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애플도 의사 타진 대상이라고 보도했다.
영국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인 ARM은 모바일 AP 설계의 절대강자다. 삼성전자 퀄컴 애플 등 100여개 기업이 ARM의 기본설계도에 자사 기술을 얹어 AP칩을 최종 설계하는데 세계 스마트폰 AP의 95%가 이렇게 생산된다.
"인텔 고전은 삼성·SK하이닉스에 악재"
인텔의 고전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엔 부정적 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예컨대 인텔이 CPU의 95%를 점유한 서버 시장의 경우, 사업자들이 신형 CPU 출시에 맞춰 서버 사양을 높이면서 이를 뒷받침할 D램과 낸드플래시 구매를 늘리기 때문이다. 개인용 컴퓨터(PC) 역시 인텔의 CPU 점유율이 83%에 달해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간 칩 설계와 제조를 직접 수행해온 인텔이 7나노칩 양산 과정을 일부 위탁할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초미세공정 기반 파운드리 사업을 병행하는 삼성전자에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인텔이 칩 생산 의뢰를 결정하더라도, AP 시장 등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삼성보다는 순수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선호할 거란 관측이 적지 않다.
ARM 매각 성사의 후폭풍은 더욱 클 전망이다. 사실상 ARM의 독점 구도인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인수자가 공급 가격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애플과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가 이 회사를 사들인다면 경쟁업체에 대한 막강한 견제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선 440억달러(약 52조6,000억원)를 호가하는 높은 매각예정가, 주요국 반독점법 저촉 가능성 등을 들어 소프트뱅크가 ARM 매각보다 상장을 택하게 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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