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신유청(39)은 최근 연극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다. 지난해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그을린 사랑’ ‘와이프’ 등으로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영화계엔 봉준호, 연극계엔 신유청'이란 말도 나왔다. 올해는 그 중 두 작품, ‘와이프’와 ‘그을린 사랑’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와이프’는 30일부터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그을린 사랑'은 9월 23일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신 연출은 “‘와이프’는 예정된 공연이지만, ‘그을린 사랑’은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작품이 취소돼 기회를 얻은 것이라 조금 아이러니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와이프’는 영국 극작가 사무엘 애덤슨의 최신작으로 1959년, 1988년, 2020년, 2042년 시대별 에피소드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를 드러낸다. 여주인공 노라의 가출이라는 충격적 결말로 유명한 1879년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을 주요한 모티브로 삼아, 지금 이 시대는 노라의 시대와 얼마나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신 연출은 “세상이 진보해도 노라를 옥죄던 현실은 여전히 반복된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했다.
신 연출은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대본을 곱씹었다. 지문으로만 제시된, 느닷없이 터져나오는 감정들이 추적하다 보니 시대와 인물이 서로 뒤엉켜 있다는 걸 새롭게 발견했다. 그는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사라져도 선대의 메시지는 후대로 이어져 깨달음을 줄 수도 있다”며 “앎의 영역이 넓어진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앎의 확장은 결국 사랑이다. “사회적 조건을 싸워 얻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사랑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타고난 본성이라고 생각해요.”
‘그을린 사랑’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동명 영화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어머니의 고국 레바논으로 떠난 쌍둥이 남매를 통해 전쟁의 상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충격적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의 무게감을 전달하기 위해 신 연출은 연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그 공간에 ‘침묵’을 채워 넣었다. 관객 스스로 생각해 보라는 주문이다. “사회 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결도 필요하지만 결국엔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야 진정한 끝맺음이 가능하다고 봐요. 제 바람과 기도를 이 작품에 담았어요.”
신 연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정치적ㆍ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연민이다. 올 상반기에 선보인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은 생계형 드래그퀸의 이야기였고, ‘궁극의 맛’은 여성 재소자들의 굴곡진 사연이었다. ‘언체인’ 때는 성별 구분 없는 캐스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개개인은 섬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드넓은 바다로 연결돼 있다”며 “무대를 통해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고 싶다”고 했다.
신 연출은 계원예고와 중앙대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2008년 ‘동물원 이야기’로 거창연극제 작품상을 받으며 연출가로 데뷔했다. 그 뒤 10여년간 ‘살인광대’ ‘소리의 위력’ 등을 만들다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연극을 소명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더 잘 버틸 수 있었어요. 감나무 아래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달까요. 하하. 연극 이전에 삶을 더 잘 살아내는 게 저에게 더 중요해요. 결국 연극의 존재 이유도 삶을 잘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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