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A씨는 폐암 진단을 받았다. 암이 이미 다른 장기로 퍼진 4기여서 수술이 불가능했다. 주치의는 A씨에게 치료 효과가 뛰어난 ‘면역항암제’를 권했다. 면역항암제는 몸속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죽이는 제3세대 항암제다. 효과가 뛰어나지만 아직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1년치 약값이 1억원이나 된다. A씨 같은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항암에 효과가 있다는 개 구충제 ‘펜벤다졸’를 먹다가 얼마 전 숨졌다. A씨처럼 펜벤다졸을 먹는 폐암 환자가 많아 이를 구하는 것도 하늘에 별 따기다. ‘복통에 아카징키(빨간 소독약의 일본식 이름) 바르는 격’이다. 한 폐암 환자는 “우리라고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데다 독이 될지도 모르는 개 구충제를 먹고 싶겠냐”고 했다.
폐암은 5년 생존율이 30%밖에 되지 않아 국내 암 사망률 1위에 오른 ‘독한’ 암이다. 2017년에만 2만6,985명이 폐암 진단을 받았고, 1만7,980명이 이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폐암은 환자의 절반 정도가 4기에 진단을 받는데, 이들의 90% 정도가 5년 이내 숨진다. 30분에 1명씩 폐암으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추정된다.
면역항암제를 폐암 1차 치료에 쓰면 5년 생존율을 4~6배까지 늘려준다.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전이ㆍ재발해 치료 옵션이 많지 않은 폐암 환자에게 삶의 희망을 되찾아 주는 복음이나 다름없다.
면역항암제는 전 세계적으로 말기 폐암의 표준 치료제로 자리잡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75%(36개국 중 27개국)가 건강보험 혜택을 주고 있다. OECD 상위 10개국 가운데 우리만 폐암 1차 치료에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혜택을 주지 않고 있다. 우리도 폐암 2차 치료에는 건강보험 혜택을 주고 있지만 현실성이 없고 적용 가능한 환자도 아주 드물다. 2017년 9월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가 1차 폐암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이후 폐암 1차 치료에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보건복지부와 제약회사 간의 협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3년째 지지부진하다. 건강보험 적용의 첫 단계인 암질환심의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폐암 환자들의 분통을 터트리게 하는 일까지 생겼다. 보건복지부가 오는 10월부터 안면신경마비, 월경통 질환, 뇌혈관질환 후유증 등 3개 질환에 대한 한방 첩약에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들 질환의 급여화에 투여되는 재정은 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폐암 1차 치료에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혜택을 줄 때 발생하는 재정 부담과 비슷한 수치다. 한국폐암환우회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면역항암제조차 돈이 없어 건강보험 적용이 어렵다는 정부가 필수적이지도 급하지도 않은 한방 첩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보니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물론 재정 부담 때문에 폐암 1차 치료에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적용이 어렵다는 정부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폐암 환자 등 중증 환자에게 더 세심한 배려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목표를 내세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케어)’이 벌써 시행 3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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