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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의 시간...준비는 돼 있는가

입력
2020.07.24 18: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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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무기대여법 통해
남북관계 새로운 모멘텀 기대한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북미의 시간을 남북의 시간으로 돌려놓기 위해 주도적으로 대담한 변화를 만들겠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이보다 앞서 그는 “금강산과 백두산의 물, 그리고 대동강 술을 남측의 쌀·약품과 맞바꾸자”라고도 했다. 실현 여부를 떠나서 ‘서울 불바다’와 ‘참수작전’으로 대표되는 남북 대결 국면을 완화하고, 남북 교류에 물꼬를 트겠다는 상상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남북관계는 가장 예측이 불가능한 분야다. 변수가 워낙 많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제안해도 상대방이 진정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찌 해볼 방법이 없다. 그래도 분단 70년 동안 최고지도자들의 ‘결단’에 따른 톱다운 방식으로 남북관계는 ‘진화’해왔다. 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이 그랬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그랬다. 그런 점에서 이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일정 부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결단에만 의존한다면 주무 장관으로서의 존재감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각종 행사에 얼굴도장이나 찍고, 인사말 하러 시간을 보낸다면 더더욱 안 될 말이다.

그래서 이 후보자에게 고독한 주문을 하고 싶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을 코앞에 두고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한 이승만 대통령의 결기와 무기대여법을 고안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 대통령의 혜안을 면밀히 살피라는 당부다.

한국전쟁의 가장 결정적 장면 중의 하나가 1953년 6월 18일 새벽에 발생한 반공포로 석방이다. 이 보다 열흘 앞선 6월 8일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 교환 합의가 성사되면서 휴전협정 조인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한국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은 협정 체결에 반대하며 6월 18일 전국 7개 수용소에 있던 2만7,000여명의 반공포로를 독단으로 석방해버린 것이다. 당시 전시작전권이 유엔군 수중에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생 독립국 지도자의 승부수에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이승만 제거를 노골적으로 입에 올렸다는 후문이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면도를 하다가 이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라 턱을 베었다고 한다.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의 항의에 이 대통령은 전작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뜻으로 대응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벼랑끝 작전으로 당초 한미군사동맹 체결에 미온적이던 미국이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실제 한미 양국은 휴전협정 체결 보름 전인 7월 12일 상호방위조약을 맺을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무기대여법은 또 어떤가. 처칠은 히틀러에 굴복하지 않고 항전을 선언했지만 영국은 경제력이 바닥나, 더는 무기를 조달할 수가 없었다. 이때 루즈벨트 대통령은 “옆집에 불이 났는데, 우리 집 호스를 빌려주고 불을 끄고 난 후 되돌려 받으면 되지 않느냐”라며 미 의회를 설득해 무기대여법을 제정했다. 미국은 2차대전에 본격 참전하기 9개월전인 1941년 3월부터 1945년 8월 종전까지 이 법을 근거로 영국과 소련 등 연합군에 500억달러에 달하는 전쟁물자를 무상으로 제공해, 나치로부터 유럽을 지켰던 것이다.

비상한 시국엔 비상한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당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른 바로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싶다. 정상 간의 톱다운 방식으로 어렵사리 쌓아놓은 신뢰가 무너지고 난 뒤 한반도 평화와 남북 교류를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반공포로 석방과 같은 과단성과 무기대여법과 같은 창의적인 지혜를 이 후보자에게 걸어본다.

최형철 에디터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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