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합의안 내홍으로 파기 '후폭풍'
반대파 "지도부 마지막까지 정파 가르기"
취약계층 보호 외치지만 신뢰 잃어한국노총ㆍ경영계 '경사노위'로 창구 단일화반대파는 강경 투쟁 예고...명분도 실리도 잃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고용위기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내 정파갈등을 뛰어넘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 합의 최종안 부결에 책임지고 사퇴하면서 앞으로 노사ㆍ노정관계는 악화일로가 예상된다. 민주노총이 스스로 제안한 사회적 대화를 내홍으로 걷어찬 꼴이 되면서, ‘민주노총은 내부 정치에만 골몰하는 무책임한 조직’이라는 비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24일 김명환 위원장과 김명자 수석부위원장, 백석근 사무총장 등 민주노총 핵심 지도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를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걸고 노사정 합의 최종안 승인을 호소했지만 부결됐다”며 “임시대의원대회 투표를 통해 확인된 대의원 여러분의 뜻을 어느 때보다 무겁게 받아들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임시 대의원대회는 노사정 대화 참여를 위해 김 위원장이 직을 걸고 추진하는 등 지도부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파갈등으로 점철됐다. 백석근 사무총장은 “지도부가 대의원대회를 제안한 것에서부터 반대가 많았다”며 “대회 중에는 가맹 산별조직들과 안건 설명 간담회를 가지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일부만 성사됐고, 절차 밖 논쟁이 더 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에는 노사정 합의안에 찬성했던 6개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배석했는데, 이를 두고 반대파 관계자는 “지도부가 마지막까지 정파 가르기를 한다”고 비판하면서 갈등의 골만 드러났다.
노사정 대화에 열린 모습을 보여온 온건파 출신 김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민주노총은 타협과는 점점 더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018년 ‘사회적 대화 참여’를 주요 공약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2018년 경제사회노사정위원회(경사노위) 참여 불발에 이어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도 강경파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노사정 대화에 참여했지만 파견법 법제화에 대한 반대로 불과 1년만에 등을 돌렸고, 이후 20여년간 비슷한 내홍을 반복하며 사회적 타협과는 멀어져 왔다. 더욱이 노사정 대화 부결 직후 반대파들은 “해고금지를 위해 하반기 총력으로 투쟁하겠다”고 나서 노사, 노정 갈등을 예고한 상황이다.
스스로 제안한 노사정 합의를 저버린 만큼 민주노총은 '무책임한 조직'이라는 국민적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난 노사정대표자회의 출범식에서 노사 모두에게 조직 내부가 아닌 오로지 국민만을 바라보며 논의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면서 “민주노총이 시대변화에 부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일갈했다. 국민을 뒤로 하고 조직 내 이전투구만 하고 있다는 우회적인 지적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강경파가 명분으로 내세웠던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는 유사한 내용이 담긴 노사정 합의를 스스로 걷어차면서 더욱 요원해질 수 밖에 없다. 노사정 합의 파기라는 민주노총의 행보는 정부가 계획중인 노동취약계층 보호정책에 힘을 싣는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노사정 대화가 결렬됐지만 합의문 중 정부측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으로, 최근 한국형 뉴딜정책을 통해 전국민 고용보험 및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 등 계획을 공개했다. 사용자측과 한국노총 등은 앞으로 노사ㆍ고용과 관련한 문제를 민주노총이 참여를 거부해 온 경사노위를 통해 해결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노동자 보호 대책이 정부나 사측, 다른 노동자들에게 진지하게 전달되기 어려운 형국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취약계층 보호 정책이 노사정 대타협을 바탕으로 추진된다면 정부가 더욱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고, 야당도 쉽게 반대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노사정 합의는 민주노총이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발판이었지만 조직논리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