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묵(忍默)의 정치

입력
2020.07.23 18:00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래통합당 김태흠 의원과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가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답변 태도를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문제 제기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김태흠 의원과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가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답변 태도를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문제 제기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묵수렴(忍默收斂)'은 청의 학자 부산(1607~1684)이 쓴 ‘잡기’(雜記)에 나오는 말이다. ‘언어는 정말 통쾌한 뜻에 이르렀을 때 문득 끊어 능히 참아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忍默). 의기는 한창 피어오를 때 문득 가만히 눌러 거둘수 있어야 한다(收斂)’는 의미다. 청의 작가 석성금도 ‘전가보(傳家寶)'에서 ‘말은 다해야 맛이 아니고, 일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석복’, 정민, 김영사) 인내하고 절제하는 언행에 대한 당부다.

□부산조차 ‘큰 용기가 있는 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 ‘인묵수렴’이 국회에 등장했다. 장소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사무실. 5월 말, 사자성어를 줄여 붓으로 ‘인묵’이라 쓴 종이를 표구도 하지 않고 벽에 붙였다. 국회 원 구성 협상에 앞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뜻으로 읽혔다. 거대 여당을 견제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야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의 무게에도 인내와 절제를 먼저 떠올린 건 용기 있는 일이었다.

□’인묵’의 유효기간은 짧았다. 21대 국회가 개원하자 주 원내대표는 ‘전투 모드’가 됐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를 향해 ‘적과 내통하는 사람’ ‘적과 친분 관계 있는 분’이라고 인신공격을 했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재론했다. 정강정책에 임시정부부터 5ㆍ18, 6ㆍ10항쟁까지 끌어안는 등 꼴보수 이미지를 벗고 중도ㆍ진보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미래통합당 행보와 앞뒤가 안 맞는 수구ㆍ냉전적 색깔론을 다시 꺼낸 것이다. 그와 통합당에 북한은 계속 ‘적’일 뿐이다.

□막말은 듣는 이에게 모멸과 상처, 증오와 분노를 남긴다. 말하는 이의 품격도 떨어뜨린다. 상대가 국회의원이면 그를 뽑은 유권자 모독이며, 정치 혐오만 심화시키는 행위다. 양보와 타협은 언감생심인 채 극한 대결로 치달아 협치는 멀어지게 된다. 말꼬리 잡기, 비아냥거림, 조롱, 야유 등은 막말전으로 이어질 전초전이다.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인묵’의 의미를 돌아보며 ‘막말 근절’과 절제와 품격의 언어 쓰기를 실천하기 바란다. 다만 7월 국회 벽두, 심상치 않은 전조가 걱정이다.

황상진 논설실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