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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인묵수렴(忍默收斂)'은 청의 학자 부산(1607~1684)이 쓴 ‘잡기’(雜記)에 나오는 말이다. ‘언어는 정말 통쾌한 뜻에 이르렀을 때 문득 끊어 능히 참아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忍默). 의기는 한창 피어오를 때 문득 가만히 눌러 거둘수 있어야 한다(收斂)’는 의미다. 청의 작가 석성금도 ‘전가보(傳家寶)'에서 ‘말은 다해야 맛이 아니고, 일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석복’, 정민, 김영사) 인내하고 절제하는 언행에 대한 당부다.
□부산조차 ‘큰 용기가 있는 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 ‘인묵수렴’이 국회에 등장했다. 장소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사무실. 5월 말, 사자성어를 줄여 붓으로 ‘인묵’이라 쓴 종이를 표구도 하지 않고 벽에 붙였다. 국회 원 구성 협상에 앞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뜻으로 읽혔다. 거대 여당을 견제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야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의 무게에도 인내와 절제를 먼저 떠올린 건 용기 있는 일이었다.
□’인묵’의 유효기간은 짧았다. 21대 국회가 개원하자 주 원내대표는 ‘전투 모드’가 됐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를 향해 ‘적과 내통하는 사람’ ‘적과 친분 관계 있는 분’이라고 인신공격을 했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재론했다. 정강정책에 임시정부부터 5ㆍ18, 6ㆍ10항쟁까지 끌어안는 등 꼴보수 이미지를 벗고 중도ㆍ진보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미래통합당 행보와 앞뒤가 안 맞는 수구ㆍ냉전적 색깔론을 다시 꺼낸 것이다. 그와 통합당에 북한은 계속 ‘적’일 뿐이다.
□막말은 듣는 이에게 모멸과 상처, 증오와 분노를 남긴다. 말하는 이의 품격도 떨어뜨린다. 상대가 국회의원이면 그를 뽑은 유권자 모독이며, 정치 혐오만 심화시키는 행위다. 양보와 타협은 언감생심인 채 극한 대결로 치달아 협치는 멀어지게 된다. 말꼬리 잡기, 비아냥거림, 조롱, 야유 등은 막말전으로 이어질 전초전이다. 여야는 21대 국회에서 ‘인묵’의 의미를 돌아보며 ‘막말 근절’과 절제와 품격의 언어 쓰기를 실천하기 바란다. 다만 7월 국회 벽두, 심상치 않은 전조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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