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김지은 “가해자 위력만큼 큰 피해자의 고통, 너무도 똑같아서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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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김지은 “가해자 위력만큼 큰 피해자의 고통, 너무도 똑같아서 괴로웠다”

입력
2020.07.24 09:00
수정
2020.07.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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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55>성폭력 생존자 김지은


“2차 가해 저지른 안희정 측근들, 오히려 국회로 영전
날 도운 이들은 일터 떠나... 그러니 누가 피해자 돕겠나”

2018년 3월 5일 TV 뉴스에 출연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지속적으로 당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김지은씨. 지난해 9월 안 전 지사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김씨는 아직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사진은 김씨의 에세이집 표지와 방송 출연 화면을 합성한 것이다. 연합뉴스ㆍJtbc 화면 캡처

“인터뷰, 하겠습니다.”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까지,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채 나락에 떨어지는 걸 보자니, 그 이름이 떠올랐다. 너무도 흡사한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가 다시 올라온 건 아닌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 것에 슬픔과 분노로 힘들진 않은지 걱정됐다.

짐작보다 더 심각하게 그는 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앓는 중이었다. 그래도 인터뷰에 응하겠다는 답에서 어떤 결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 “제가 부족하지만, 지금 (박원순 사건) 피해자를 비롯해 비슷한 고통을 겪는 분들께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겠어요.”

생존했기에, 다른 피해자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자신이 힘든 순간에도 그는 그들을 놓을 수가 없다.

나와 이름이 같은 김지은(35)씨. 글 쓰는 게 행복하고 책과 사람을 좋아해 소박한 서점을 여는 게 꿈이었던 그의 삶은 아직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서 멈춰 있다. 2018년 3월 5일 TV 뉴스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미투’한 이후 3년째 그렇다.

최근엔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성폭력 사건에 휘말리는 걸 보며 그는 바뀌지 않은 현실에 다시 몸서리쳤다. “더는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제가 ‘미투’를 외쳤던 2년 전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듣는 일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하도 울어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에서 종일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2년 전 ‘미투’를 두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결단이었지만, ‘노동자 김지은’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버리는 일이었다”며 “살기 위해 또 다른 의미의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미투 이후, 마음 편히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지인을 만나는 자연인의 삶이 중단됐다. 그 뿐인가. 가족까지 고통에 시달리게 만들었다는 자책까지 그를 휘감고 있다. 그래도 그는 “말하기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첫걸음”이라고 믿기에, 미투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이 인터뷰 역시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열망의 표현이다. 인터뷰는 14~22일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수 차례 주고 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는 “최근 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채 인터뷰하기 어려운 걸 이해해달라”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안희정부터 박원순까지, 성범죄 평행이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기 전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같은 사유로 사퇴했다. 지난 달 9일 부산시청 앞에서 부산성폭력상담소 등 피해자 지원단체들이 오 전 시장 사건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부산=뉴스1

-성폭력 피해자에게 진정한 생존은 ‘일상으로의 안전한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일상으로 복귀했나요.

“아직 회복하는 과정 속에 있어요. 걱정해주시는 분들에게 괜찮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은 날이 더 많아요. 제 모든 일상은 깨진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 버렸죠. 잘 먹고, 잘 자는 평범한 일상이 제게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조금씩 노력하고 있어요. ‘일상으로의 안전한 회복’은 피해자도 의지를 갖고 노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2차 가해와 관련한) 여러 뉴스를 접하면서 아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실망감을 느꼈죠.”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많았어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그리고 최근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죠.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고통스러웠어요. 혼란스러웠고 실망스러웠어요. 제가 미투를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선 긋기에 바빴어요. 권력형 성범죄 사건의 본질이나 해결에 집중하지도 않았죠. 위력을 만든 조직 구조의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았고,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했어요. 미투가 일어나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모두가 말하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조직 내 범죄사각지대에 피해자가 방치된 거죠.”

-보도를 보고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을 것 같아요.

“가해자의 범죄 행위부터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악플까지 일련의 상황이 비슷했어요.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고, 그때의 감정이 올라왔어요. 가해자의 범죄 패턴이 유사한 것만으로도 괴로웠는데, 2차 가해까지 같은 유형이었어요. 피해자는 부당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뿐인데. 가해자가 지닌 위력만큼이나 피해자가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의 크기는 여전히 커 보여요.”

◇절대 죽을 수 없었던 이유

‘박원순 사건’의 피해자 법률대리인과 지원단체들은 22일 연 기자회견에서 전ㆍ현 비서진 20명이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했다고 밝혔다. 김지은씨 역시 ‘미투’ 전 조직 내에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연합뉴스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였던 박 전 시장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사망 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성추행 혐의로 피소 당했다는 사실도 보도됐죠.

“사실 너무 힘든 한 주를 보내던 때였어요. 심적으로 불안정하던 때 박 전 시장의 사건은 제게 여러 가지로 더 고통을 주었어요.”

-‘애도는 해야 한다, 공은 공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온정론과 ‘성추행 혐의자를 공개적이고 대대적으로 애도하는 건 2차 가해’라는 비판론이 대립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고인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갖는 것과 성추행 혐의의 진실 규명은 명백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특히 개인적인 애도와 권력을 가진 분들의 공식적인 지지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해요. 고인을 추모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 어딘가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피해자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모든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전개가 흡사해요. 미투를 하면 ‘왜 이제 와서’ 혹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쏟아져요. 김지은씨도 같은 음해에 시달렸죠. ‘앞길을 꼭 망쳐야겠느냐’는 가해자 옹호론도 있고요.

“사건이 흡사하다는 말 속에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권력의 문제라는 점이죠. 그러니 누구나 그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위력이 있는 가해자가 있고, 가해자를 둘러싼 위력적인 세력이 있다면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으니까요.”

-미투 이후의 시간은 결국 위력과의 싸움인 거죠.

“사건이 일어나고, 고발하면 늘 피해자는 가해자 한 사람이 아니라 비호 세력과도 싸움을 해야 해요. 한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여러 허위 사실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통로로 순식간에 퍼져나가요. 상식적으로는 그런 2차 가해의 시발점이 된 사람들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는 달라요. 그들이 속해있는 조직에서 오히려 ‘영전’했죠. 반면, 저를 도와준 분들은 여러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자신의 일터를 떠나게 됐어요.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그 분들이 받는 고통을 보며 저 역시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이런 상황은 지난 9일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9개 여성단체들이 낸 성명에 잘 적시돼있다. 이들 단체는 “국회가 권력형 성폭력 2차 가해자들의 피난처냐”고 비판했다. 안희정 사건 초기부터 온ㆍ오프라인에서 2차 가해를 주도하거나 방조한 안 전 지사의 측근이나 가족을 여당 의원들이 보좌진으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성명에 따르면, 그들은 ‘안희정계’로 분류되는 이후삼 전 의원(20대)ㆍ강준현 의원실을 비롯해 박병석 국회의장실 등에 채용됐다. 단체들은 “폭력 가해자를 방조·비호하고, 2차 피해를 양산하던 사람들을 임용하고 승진시켜온 국회와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런 점들이 미투를 더욱 두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겠죠.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계가 스스로 자정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데, 누가 피해자 옆에서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범죄일지라도 외면하고 살아야 살 길이 보인다는 메시지를 정치권이 계속 주고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와 조직에 대한 잘못된 충성 경쟁을 만드는 것 같아요. 정말 끔찍해요.”

-박원순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심지어 유서에도 아무런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모호한 말만 남기고 유명을 달리했어요. 그래서 피해자는 더 고통이 클 수도 있을 거예요. ‘모두에게 죄송하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라는 박 시장의 유서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가해자와 달리 피해자는 죽음으로 그 어떤 것도 증명해 낼 수 없어요. 온전히 끝낼 수도 없어요. 이를 악물고 살아서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피해자의 상대적 운명이 떠올랐어요.”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자신을 그가 떠올렸다.

“2년 전 저는 죽음 앞에 서있었어요. 죽기를 결심하고 시도하려 했지만 그날 죽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마지막 순간에 주검으로 돌아온 저를 보고 가슴 찢어질 부모님이 생각났어요. 그리고 제 죽음에 안도할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진실을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죽으면 진실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범죄자와 범죄를 암묵적으로 방치했던 사람들, 범죄를 수면 아래로 내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사람들 틈에서 꼭 증명해내고 싶었어요. 죽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닌, 살아서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절대 죽을 수 없었어요. 피해자의 죽음은 어떤 것도 멈추게 하지 않아요. 참 가혹하죠.”

◇박원순 사건, 너무도 흡사해 참담

김씨는 ‘미투’ 이후 대중은 물론 동료들까지 ‘2차 가해’에 나서는 걸 봐야 하는 심정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데엔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연대의 목소리가 있었다. 2018년 11월 서울 고등법원 앞에서 ‘안희정성폭력사건공대위’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용기 있게 심경을 밝힌 ‘박원순 사건’ 피해자가 겹쳐져요.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죠.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고요.

“심히 참담하고 괴로웠어요. 제가 겪었던 상황과 비슷해서 안타까웠어요. 더는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어렵사리 제가 미투를 외쳤던 2년 전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듣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어요. 이제는 말라비틀어져서 더 흘러나올 눈물도 없을 것 같았는데 하루 종일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며칠을 몸살에 시달렸어요. 시간을 거슬러 (미투를 했던) 2018년 3월 5일에 갇힌 것 같았어요.”

-지원단체들과 법률대리인이 대신 전한 피해자의 의중은 진상 규명이에요. 이를 두고도 누군가는 ‘죽음으로 답을 대신 했다’며 덮어야 한다고 하지요.

“어떤 죽음이 애도되어야 한다면, 어떤 생존도 존중되어야 해요. 죽음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건의 실체 규명은 필요하다고 봐요. 더 이상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니까요. 제가 관련 법을 잘 몰라서 ‘공소권 없음’에 따른 사건 종료나 이후 법적 절차에 대해 깊은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피해자를 향한 일부 대중의 가혹한 공격을 막기 위해서라도 수사기관의 공정한 수사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가장 고통스러울 거예요.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많이 불안정하고 주변에 대한 경계도 크시리라 생각해요. 그저 피해자와 가족이 안전하게, 건강을 잘 챙기며 계시길 바라요. 따로 뵐 일이 있다면 긴 말 보다 그분(피해자)의 손을 잡아드리고 싶어요. 당신 곁에 서겠습니다. 힘내세요.”

(※기사 ②김지은 “안희정 모친상 조문 행렬에 공포... 난 여전히 화형대 위 마녀”로 이어집니다.)

김지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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