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주의 숨가쁜 행보... 혼란 더해지는 예멘 '南南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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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주의 숨가쁜 행보... 혼란 더해지는 예멘 '南南 내전'

입력
2020.07.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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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계속되는 내전으로 고통받는 예멘 시민들이 9일 사나에서 국제구호단체의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6년째 내전 중인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 중동 패권국들의 군사적 개입으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에 처했다”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7월 UAE가 자국 군대를 거의 철수했고, 일각에선 사우디 역시 예멘 탈출을 모색 중이라는 전언이 나와 두 나라가 ‘출구 전략’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UAE는 4년여간 군사훈련과 지원으로 다져 놓은 친(親)UAE 무장 정치조직과 대원들이 건재하다. 사우디 주도 아랍동맹의 예멘 공습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분쟁과 인도주의 위기의 끝은 좀체 보이지 않는데, 최근 분리주의 세력의 강경 행보로 예멘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모습이다.

1990년 5월 남북 예멘이 통일되기 전 남예멘(예멘인민공화국)처럼 독립국가를 꿈꾸던 ‘남부과도위원회(STC)’는 지난 4월 26일 ‘남부 자치’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예멘 남부와 남동부 일대는 현재 만수르 하디를 대통령으로 하는 예멘정부가 존재한다. 그러나 2014년 9월 수도 사나를 후티 반군에 일찌감치 빼앗긴 하디 정부는 임시수도인 남부도시 아덴마저도 지난해 8월 9일 이른바 ‘아덴 전투’에서 패하며 STC에 내줬다. 하디 정권은 ‘유엔이 공인한 예멘 정부’라는 타이틀을 빼면 사실상 정부 기능을 상실한 식물 지도부나 다름없다. 하디 정부와 STC는 북부 무장정치 세력인 후티 반군과의 대치 전선에서만 형식적 동맹관계를 유지할 뿐, 두 진영의 충돌이 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4월 남부 자치를 선언한 STC는 다음 달 성명을 통해 동부 알마흐라 지역을 “남부에 귀속된 영토”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통치권 행사를 선포한 셈이다. 6월 20일에는 예멘 본토에서 남쪽으로 400㎞ 떨어진 소코트라섬 지방정부를 장악, 일종의 ‘쿠데타’를 감행했다. 소코트라 주지사 람지 마후르스는 친 ‘알이슬라’ 계열로 알려져 있다. 알이슬라와 STC 역시 반(反)후티 라는 공통분모 외에 정치 철학부터 다른 첨예한 갈등 관계다. 알이슬라는 이슬람주의 정치의 표본인 무슬림 형제단의 예멘 버전으로 통하는 무장 정당이다. 반면, 분리주의를 표방하면서 동시에 세속주의 성향의 STC는 냉전시대 옛 소련의 지원을 받으며 중동 유일의 마르크시스트 정부로 통했던 남예멘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이다. STC가 완전 귀속을 선언한 소코트라섬 역시 예멘이 분단됐던 시절 남예멘에 속한 영토였다.


예멘 내전의 한 축으로 지목되는 남부과도위원회 소속 무장대원들이 지난달 27일 친정부 세력과의 전투를 위해 남부 아브얀 지역에서 이동하고 있다. 아브얀=EPA 연합뉴스


지난해 아덴 탈취에 이어, 남부자치 선언과 소코트라섬 장악으로 이어지는 STC의 공세적 행보 탓에 지난해 11월 사우디 중재로 하디 정부와 STC가 권력 분담에 동의한 ‘리야드 합의’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STC 자치 선언 이후 남부 지역 8곳 중 6개 지방정부들이 STC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예멘 남부 민심은 분리주의에 일단 호의적인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이달 20일 동부 하드라못 지역의 중심도시 무칼라에선 STC를 지지하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개최됐다. 동부 알마흐라 지역에서도 25일 STC 지지 집회가 예고돼 있다. 물론 하디 정부의 무능에 지친 반작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긴 하다.

STC와 하디 정부가 대립하는 ‘남부 내전’ 구도를 복잡하게 만들 요인은 또 있다. 최근 2년여 동안 무섭게 떠오른 타리크 살레 준장과 그가 이끄는 국민저항군(NRF)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NRF는 반후티 전선에서 UAE 측 지원을 받아온 여러 민병대 중 하나지만 무게감이 다른 조직과 사뭇 다르다.

타리크 살레는 2017년 12월 후티 반군 손에 처참하게 살해당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조카이다. 그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33년 권좌에서 내려온 살레 정권 시절 대통령궁 경호 담당 엘리트 부대를 책임졌다. 통일 예멘을 좌지우지한 살레 세력의 핵심 실세였던 것이다. 그의 부상을 살레 세력의 귀환 신호로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랍의 봄 이래 지금까지 타리크 살레가 보인 행보는 지속되는 예멘 정치의 혼란상과 복잡한 내전 지형을 잘 보여준다.

아랍의 봄 여파로 하야한 살레 전 대통령은 2014년 한 때 정적이던 북부 후티세력과 손을 잡고 남하해 수도 사나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이 시기부터 타리크 살레는 후티ㆍ살레 동맹에서 군 사령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4~2010년 사이 내전을 6차례나 치른 앙숙 관계를 증명이라도 하듯, 후티 반군은 2017년 하반기 살레 진영이 자신들을 배제한 채 사우디와 ‘내통’하는 걸 눈치채고 살레 전 대통령을 무참히 살해했다. 삼촌이 죽임을 당한 후 타리크 살레는 후티 수중의 사나를 탈출해 잠적했고, 이듬해 1월 남부에서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사우디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사우디는 후티와 살레를 갈라 놓기 위해 타리크 살레를 수장으로 하는 ‘군사평의회’를 구상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부로 ‘전향’한 타리크 살레는 이제 UAE의 지원과 비호 아래 NRF를 결성, 남부 반후티 전선의 최선봉을 맡고 있다.

NRF는 살레 정권의 엘리트 부대였던 ‘공화국 수비대’ 출신이 주축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이후 UAE의 후원을 받는 다른 민병대들과 함께 후티 반군과의 최전선인 서부해안 호데이다 지역에서 치열하게 대립 중이다. 지리와 데이터에 기반해 분쟁지역을 분석하는 ‘무장분쟁 데이터 프로젝트’에 따르면 NRF는 3,000~1만명(정규군 3,000~4,000명) 가량의 전투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타리크 살레 예멘 국민저항군 사령관. 트위터 캡처


NRF의 세력 강화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삼촌은 죽었으나 조카를 통해 살레 세력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다른 측면은 이들과 남부 최강으로 우뚝 선 STC의 갈등이 본격화할 경우 예멘 남부를 한층 더 혼돈으로 몰아 넣을 것이란 점이다. STC와 NRF 모두 반후티 전선에 서 있고, UAE의 비호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한 배에 오른 듯 보인다. 그러나 두 조직 역시 정치적 이데올로기부터 걸어온 여정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성향이 다른 정치 집단이다. 이미 STC와 NRF는 2018년 4월 남부 알무카에서 크게 격돌한 바 있다. 충돌의 발단은 STC가 통일국가 예멘공화국의 깃발을 찢은 사건이었다.

종합하면 통일파와 분리주의파, 세속주의자들과 이슬람주의자들이 일시적이고 전략적인 동맹을 맺고 있는 있는 예멘 남부는 하디정부 대 STC로 갈린 공식적 남남내전 외에도 분쟁을 악화시킬 갈등 요소가 지뢰밭처럼 널려 있다. 예멘 문제 전문가인 아델 다셸라는 지난달 9일 아랍권 매체 인사이드 아라비아에 “살레 세력과 STC를 하나로 묶어 주는 유일한 변수는 두 조직 모두 사우디 지원을 받는 예멘 (하디) 정부를 향한 적개심이 강하다는 것”이라며 “다만, 아덴에서 (STC의) 반란이 군사적으로든, 리야드 합의에 의해서든 잠잠해지지 않고 불안이 계속되면 살레 세력이 예멘국가를 향해 봉기를 일으키는 날이 머잖아 도래할 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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