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전날 블로그 등에 급속히 퍼져... 기재부, 수사 의뢰
청와대가 언론의 엠바고 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2일 “엠바고 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22일 말했다. ‘엠바고’는 국익ㆍ공익 등을 위해 언론이 정부 발표 관련 보도 시기를 일정 시점까지 연기하는 것으로, 강제 규정은 아니다. '언론의 선의에 의한 자율적 관행'인 엠바고 제도를 청와대가 정면으로 문제 삼은 건 이례적이다.
기획재정부의 22일 공식 발표 전에 ‘2020년 세법 개정안’ 자료가 통째로 인터넷에 유출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20일 엠바고를 걸고 개편안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는데, 내용이 블로그 등에 게재됐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출입기자들에게 한글파일(HWP)로 된 설명자료를 미리 공유했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보도'를 위해 정부가 중대 현안 관련 자료를 기자들에게 미리 공개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해당 자료는 21일 인터넷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느 선에서 유출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자, 정부ㆍ국회 관계자 등이 '용의선상'에 올라 있다. 기재부는 21일 세종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철저히 조사해 강력한 대응이 이뤄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언론과 정부의 '상호 신뢰'를 전제로 공유되는 정부 정책 자료가 무차별로 유통되는 부작용은 상당하다. 가상화폐(비트코인) 투자 과열 양상에 따른 정부 대책이 고스란히 유출됐던 것이 한 예다. 2017년 ‘고교생 이하 미성년자나 비거주자(외국인)의 계좌개설 및 거래금지 추진’ 등의 내용이 담긴 정부 초안이 유출돼 가상화폐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락한 바 있다. 이듬해 1월엔 엠바고가 걸린 자료를 국무총리실 일부 출입기자가 외부로 전달했다가 적발된 일도 있었다.
정부 정책이 새 나가면 정책적 효과가 반감되는 것을 정부는 우려한다. 정책 도입 취지나 배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여러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세제개편안 자료 역시 “다주택자를 죽이겠다는 것이다” “세법이 개정될 때마다 세금이 늘어난다” 등 정체 불명의 부연 설명이 붙은 채 유통됐다.
올해 지난 3월과 5월엔 정부가 발표하지 않은 등교개학 일정 정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먼저 게시돼 막대한 혼선을 빚었다. 엠바고란 이름을 달고 가짜 정보가 퍼지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1월엔 국토교통부 자료 형식을 그대로 베낀 거짓 자료가 온라인상에 퍼져 시장에 혼란을 줬다.
엠바고 자료의 유출 현상이 심각해진 건 스마트폰 보급 확대와 언론의 디지털 전환 등과 맞물려 있다. 스마트폰이 정보 확산 속도와 범위를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청와대는 언론 등에게 '경고'를 하는 취지에서 엠바고 제도 검토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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