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 조사 결과, 의혹 제기된 '브렉시트' 국민투표 러시아 개입 증거 못잡아…정부 소극 대응 질타
"정ㆍ재계에 거대한 러시아 자금 유입 문제"
영국 하원의 정보안보위원회(ISC)가 러시아의 자국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해 정부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의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에 대한 개입 증거가 있고 2016년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개입 의혹도 불거졌는데도 정부가 이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내용이 담긴 ISC의 일명 '러시아 보고서'는 작성 이후 무려 1년 4개월이나 지나 공개됐다. 그간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제 러시아 개입에 대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영국 BBC방송과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공개된 ISC 보고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2017년 총선 등 영국 정치에 대한 러시아 개입 의혹을 조사한 끝에 러시아의 영향력을 '뉴노멀'(새로운 정상)로 정의했다. 그만큼 러시아의 정치 개입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배경으로 집권당인 보수정당 인사들과 러시아 정치인(혹은 부호)과의 끈끈한 관계에 주목했다. 보고서는 "상원 의원 중 상당수가 러시아 연계 사업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런 관계들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계 인사의 부패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보고서는 영국 정ㆍ재계에 러시아 돈이 유입된 지는 오래라고 설명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부터 영국에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 과두재벌)의 부패 자금이 흘러들어왔다. 보고서는 "투자 비자 제도ㆍ주택 시장 등과 관련 상당한 자금이 유입돼도 그 출처를 입증하라는 요구는 거의 없다"면서 "이로 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들도 쉽게 영국 사회로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라도 그들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번 보고서 관련 정부 측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러시아가) 성공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조사 필요성을 일축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 보고서를 '루소포비아(러시아 공포증)'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미국이나 영국, 다른 어떤 나라의 선거에도 개입한 적이 없다"며 "다른 나라들의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며 다른 나라가 러시아의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3월 완성돼 같은해 10월에 총리실에 전달됐지만 총리실이 공개를 미뤄왔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12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유로 보고서 공개를 지연했다는 비판이 일면서 음모론과 은폐 의혹도 불거졌다. ISC 위원 중 한명인 케반 존스는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존슨 총리가 일찍 보고서 공개를 결정하지 않은 데 대해 "지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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